|
도둑공화국
제6공화국시절에 "민나 도로보데스"라는 말이 유행했었다. 일본말로 "말짱 도둑놈이다"라는 뜻이다. TV연속극에 이런 대사가 있었는데 당시의 시대상황과 딱 맞아 떨어져 대단한 유행어가 되었었다. 그때 나는 이 나라에 도둑이 아닌 자가 과연 몇이나 될까? 하고 생각해 보았다. 그러면서 도둑의 유형을 다음과 같이 분류 해 보았다. 대도(大盜)와 소도(小盜), 적극도(積極盜)와 소극도(消極盜), 주는 도둑과 받는 도둑, 현재도(顯在盜)와 잠재도(潛在盜)가 그것이다. 그런데 이 말이 요즈음에 와서 자꾸만 되새겨지고 있다. 아직도 우리는 후진국이다. 뱃 속에 기생충를 많이 가지고 사니까.
첫째, 도둑질의 규모에 따라 큰 도둑과 작은 도둑으로 구분해 보자. 수 십억에서 수 백억을 넘어 수 천억을 해 먹어도 끄떡없는 도둑이 있는가 하면 단돈 몇 십만 원에 감옥에 가고 몇 만원의 돈을 위해 여러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 도둑도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왕 도둑이 될 바에는 큰 도둑이 되라고 한다. 큰 도둑이 되면 도둑질 한 돈으로 일부 뇌물을 쓰면 감옥에 안 갈 수도 있고 감옥에 간다해도 조금만 형을 살면 곧 나올 수있으니 말이다. 그래도 보통사람들은 간이 작아서 큰 도둑질은 잘 못한다. 그러나 매일 같이 '억 억' 하는 소리를 듣다보니까 작은 돈은 돈 같지를 않아서 아무런 양심의 가책도 없이 집어삼킨다. 그러다가 들키면 억울하다고 한다. 큰 도둑들은 다 건재한대 조무래기만 잡아 가둔다고. 큰 도둑은 아니라 해도 이런 작은 도둑에도 들지 않는다고 큰 소리 칠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다음은 적극적인 도둑과 소극적인 도둑을 보자. 어떤 직위든 그 직위에 따르는 임무가 있다. 직위에는 그 임무를 완수할 수 있도록 일정한 권한을 부여하고 임무를 성실하게 완수했는지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이 원칙이다. 따라서 직위의 높이와 부여되는 권한과 책임의 크기는 언제나 정비례한다. 이것은 원칙이 아니라 예외가 없는 철칙(鐵則)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흔히 책임은 팽개쳐버리고 권한만 행사하려고 한다. 임무에 성실한 사람은 바보로 취급한다. 혼자 잘난척 한다고 비웃는다. 도둑들 천지인데 혼자서 깨끗하기란 이렇게 어려운 것이다. 그래서 직위를 이용해서 은근히 또는 노골적으로 무언가를 갖다 바치기를 요구한다. 이런 자들은 적극적인 도둑들이다. 가만히 있는데도 찾아와서 갖다 바치는 돈을 집어 삼키면 이것은 소극적 도둑이다. 아무 대가성이 없는 돈이며 아무도 모르는 돈이니까 괞찮다면서 그냥 써라고 한다. 당장에 그 대가를 요구하지를 않으니까 뒤에 숨은 함정을 못 본다. 대가는 나중에 어차피 누군가에게 주어야 할 돈을 그 사람에게 주면 되는 것이다. 겉으로는 객관적인 심사를 거쳐 공정하게 결정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 심사기준이 엿장수 마음대로다. 이런 도둑들은 잡혀가면서도 일반적인 관행인데 왜 나만 잡아가느냐고 항변을 한다. 교통법규를 위반한 운전자가 경찰관에게 잡히면 앞차는 보내주고 왜 나만 잡느냐고 항변하는 것과 같다. 그러면 경찰은 "내 혼자서 무슨 재주로 저렇게 많은 위반자를 다 잡아란 말이냐?"고 한다더라. 내가 비록 적극적인 도둑은 아니라 해도 이런 소극적인 도둑도 아니라고 큰 소리 칠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다음은 챙기는 도둑과 주는 도둑이다. 대부분의 도둑들은 챙기는 도둑이다. 챙기는 도둑들에게는 모든 돈이 나의 돈으로 보인다. 공금은 물론 나의 돈이요 남의 돈도 나의 돈이다. 그래서 우리나라 공금은 먼저 보는 자(? 사실은 다른 글자를 쓰고 싶은데!)가 임자라고 하지 않는가?! 남의 주머니 돈을 챙기기 위해서 은근히 힌트를 주기도 하고 때로는 회유도 하고 협박도 한다. 주는 도둑은 되로 주고 말로 받을 심보로 주는 것이다. 그런데도 대가성 없는 순수한 떡값이라고 한다. 그자들은 매일 같이 떡만 먹고 사는가보다. 그 많은 돈이 떡값이라니. 높은 지위에 않게 되면 눈도장이라고 찍으려고 줄을 선다. 누군가 그 주변인물이라도 아는 사람이 없나하고 눈에 불을 켜고 설친다. 그러다가 조그마한 끄나풀이라도 잡으면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이런 자들이 대통령 아들을 가만히 둘 리가 없다. 아들이 없으면 동생을 잡는다. 권력자의 주변인물이면 운전기사도 개인 심부름꾼도 가만히 두지 않는다. 높은 사람하고 사진이라도 찍으면 액자를 해서 걸어 놓는다. 이런 사진을 걸어 놓는 사람은 잠재도둑일 가능성이 높다.
다음은 현재(顯在)도둑과 잠재(潛在)도둑이다. 현재도둑은 지금 그 도둑질이 발각된 도둑뿐만 아니라 도둑질이 발각되지는 않았다 해도 한번이라도 도둑질을 한 사람을 말한다. 잠재도둑은 지금까지는 도둑질을 안 했지만 언젠가 도둑질을 쉽게 할 수 있는 위치에 앉게 되면 금방 도둑이 될 가능성이 있는 사람을 말한다. 작은 도둑들은 큰 자리에 않게 되면 금방 큰 도둑이 될 가능성이 높다. 소극적 도둑은 언젠가는 적극적 도둑이 될 가능성이 높다. 우리의 속담에도 "바늘 도둑이 소 도둑 된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그러나 비록 지금까지는 도둑이 아니었지만 출세를 해서 어떤 직위가 주어진다면 누구나 도둑이 될 가능성이 다 있다. 만약 나에게 이런 소질이 있다면 나는 출세를 하지 않는 것이 출세를 해서 감옥에 가는 것보다 훨씬 났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비록 감옥에 갈망정 출세를 하고 큰 도둑이 되어봤으면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더라. 물론, 농담이겠지만. 큰돈이 드는 줄 알면서도 이를 각오하고 높은 자리에 입후보하는 사람들은 돈 쓰고 큰 도둑이 되어 본전을 뽑자는 심사인가? 이런 잠재도둑에도 들어가지 않는다고 할 사람이 과연 있을까?
선거 철이다. 잠재도둑들이 현재도둑으로 변신할 준비를 하고 있다. 서로가 도둑이라고 한다. 저네끼리 다투기를 서로가 더 큰 도둑이라고 한다. 관행적인 떡 값만 챙겨도 부자가 된단다. 이런 도둑들은 우리 몸 안의 기생충과도 같다. 이념도 정책도 그 다음이다. 이념이나 정책은 보다 낳은 발전을 위해서 필요한 것이다. 몸 안에 기생충이 많으면 아무리 영양식을 한다해도 소용이 없는 일이다. 무엇보다 시급한 일은 구충제를 먹는 일이다. 부정부패를 척결하는 일이 이 시점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다. 누가 과연 도둑을 잘 잡을 수 있을까? 이 나라에 법이 과연 있는 가? 우리는 과연 양심을 가진 사람들인가? |
essa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