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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양심선언
헝가리 천주교회의 수좌 민첸티 추기경은 공산주의에 대항해서 싸워온 헝가리 국민의 정신적 지주이자 전세계 자유민의 희망이었다. 1892년에 태어나 1915년 사제로 서품되면서부터 1975년 선종때까지 파시즘과 공산주의에 항거해 온 자유의 투사였다. 그로인해 1948년 체포되어 1956년 소위 「부다페스트의 봄」이라 일컬어지는, 헝가리 반공 봉기 때 출옥되었다. 만 8년이란 이 기간 동안 공산당의 고문이 어찌나 악랄하고 계책이 교활했던지 그들이 무슨 발표를 어떻게 할지를 몰라「양심선언」을 발표했다.
사실 공산주의자들은 민첸티 추기경을 고문하면서 「세뇌교육」이란걸 실시했고 마약까지도 사용했다. 그래서 민첸티 추기경이 자신도 모르게 자백이란걸 하도록 만들려는 것이었다. 이러한 지경이 되니 추기경 자신도 행여나 자신의 입에서 어떤 말이 나올지도 모를 일이고 이로 인해 신자들이 오해하고 판단이 흔들릴까 봐 소위 「양심선언」을 발표했다. 『이후 양심선언 내용과 다른 것은 전혀 내 뜻이 아니요, 그것은 거짓이거나 고문에 의한 것이니 무효이며 국민들은 동요되지 말라』는 뜻이었다.
우리나라에서도 1970년대에 들어와 지학순 주교의 양심선언이 있었고 시인 김지하·최기식신부·오원춘·문부식등 많은 사람이 양심선언을 했지만 그 중에서도 제일 문제가 된 것은 오원춘의 양심선언이었다. 그것은 양심선언 이후 시간과 장소에 따라 양심이 번복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당시만 해도 대개는 최초의 양심선언을 믿고자 했다.
최근 서울의 모대학 교수가 오늘의 현실에서는 더 이상 대학 강단에서 학생들에게 진리를 가르칠수 없고 양심을 지킬수 없어 강단을 떠난다는 내용의 양심선언을 발표하고 대학을 떠났다. 며칠 후 학생들에게 더 큰 피해를 줄까봐 다시 돌아왔다는 변을 늘어놓았다가는 또 사표를 냈단다. 때가 때인지라 온 갖 억측을 불러일으킬 수있고, 또 사실 그 진의가 어디에 있는지는 남의 속 양심이라 알수가 없다. 하지만 한가지 분명한 것은 「양심선언」이란 그렇게 가볍게 사용될 것은 아닌 것 같다. 양심선언을 하려면 그 양심을 지키고자 온갖 노력을 다 하겠다는 각오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이제 「양심선언」마저 불신의 대상이 될까 두렵다.
이것은 가톨릭신문 1986년 4월 27일자 나의 컬럼 <걸림돌>의 내용이다. 요즈음 양심선언이 너무 흔하고 남발되어 양심선언 마저 못 믿게 되었다. 양심선언을 하는 사람은 양심선언을 하지 않은 말은 자신의 양심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말인가? 그렇다면 자신의 말은 무엇인가? 보통 사람들은 자신의 인격과 양심에 따라 말을 하는 법이다. 그래서 사람의 말을 믿는 것이다. 그렇지 못하다면 사회가 어떻게 유지될 수 있겠는가?
우리는 말에 대한 신빙성이 없다. 이것을 우리는 서로가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상대방의 말을 믿을 말인지 믿지 말아야 할 말인지를 안다. 어느정도 믿을 말인지도 안다. 약속도 때로는 안지켜도 된다. 살다 보면 그럴 수도 있지 뭐 그런걸 가지고 야박하게 구느냐 하는 식이다. 상대방도 당연한 걸로 받아 들인다.
그러니 우리끼리 살아갈 때에는 별 문제가 없다. 그러나 세계화 시대에 전세계인들과 어울려 사는데는 문제가 생기지 않을 수 없다.
한국 사람들은 믿을 수 없는 사람들이다. 말로 한 약속은 물론 못 믿고 문서로 한 약속도 믿지 못할 경우가 많다. 이런 사실을 알게 된 외국인들이 우리와 거래를 하지 않으려 한다. 믿지 못할 사람과 거래할 사람이 어디 있겠느가? 그래서 우리는 IMF라는 호된 시련을 겪지 않았는가!
이제 우리도 말의 신뢰성을 다시 찾아야 할 때가 되었다. 사람의 말은 그 사람의 인격이요 그 사람의 양심이다. 양심선언이란 자신의 의지력으로는 도저히 양심을 지킬 수 있는 상황이 아닐 때 필요한 것이다. 어떤 사람이 사실을 증언하면 그것으로 족한 것이지 왜 구태어 양심을 걸고 증언을 해야 한단 말인가? 법정에서 증언을 할 때에는 당연히 양심대로 증언할 것을 선서 하는데 그것으로는 부족하고 별도의 양심선언을 해야 세상사람들이 믿는단 말인가? 이렇게 양심을 두번 세번 강조해야 한다는 사실은 우리가 이미 양심을 상실했다는 증거가 아닐까? 이제 우리 모두는 잃어버린 양심을 되찾아야 할 때가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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