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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군 위안부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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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재시대의 종군 위안부 문제’로 일본과 우리의 박근혜 정부가 모종의 밀약을 한 모양이다. 일본정부는 돈을 좀 주고 이 문제는 이제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으로 해결 했다고 한다.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일’이 인간세상에서 있을 수 있는가? 비록 원수라도 용서하라는 성경 말씀이 생각난다. 마태오 복음과 루카 복음이 조금 다르다.

“그때에 베드로가 예수님께 다가와, “주님, 제 형제가 저에게 죄를 지으면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일곱 번까지 해야 합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 <마태오 18/21-22>

“네 형제가 죄를 짓거든 꾸짖고, 회개하거든 용서하여라. 그가 너에게 하루에도 일곱 번 죄를 짓고 일곱 번 돌아와 ‘회개합니다.’ 하면, 용서해 주어야 한다.” <루카 17/3-4>

물론 우리도 일본을 용서해야겠지...하지만 루카복음에 의하면 ‘회개하거든...’이라는 단서가 붙어 있다. 그런데 일본은 회개하는 것 갖지 않다.

마태오 복음에 의하면 베드로의 질문은 이렇다. 
“주님, 제 형제가 저에게 죄를 지으면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만약, 이 때 베드로가 
“주님, 제 형제에게 죄를 지었으면 몇 번이나 사과를 해야 합니까? 일곱 번까지 해야 합니까?”
라고 질문했다면 예수님께서는 무어라 대답하셨을까?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사과해야 한다.”

또는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를 청해야 한다.”
라고 대답하시지 않았을까?

죄를 지은 형제가 회개하고 사과하고 용서를 청하면...
그렇다면 우리의 감정도 조금은 풀릴 것이고 세월이 지나면 잊힐 날도 오겠지...
그런데 이건 아니다.
한편에서 사과하고 다른 한 편에선 또다시 부아를 지른다. 
앞에서는 용서를 청하고 돌아서면 딴청을 부린다. 
돈 몇 푼에 ‘최종적, 불가역적’이라 했으니 우리의 자존심을 송두리 채 손상당한 것이다. 
부디 우리 정부가 이번에는 현명하게 처리해 주기 바란다.

[인쇄하기] 2017-08-01 18:2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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