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유럽성지순례기 2001. 7/6-7/21(15박 16일)

여유 있게 계획한 여행이 아니라 항공권을 예약하고 좌석을 확보하는데 너무나 힘이 들었다. 싼 항공권은 이미 매진되었고 대한항공(KAL)은 너무 비싸서 프랑스 항공(Air France)을 이용하기로 했다. 파리를 기착지로 하여 루르드와 로마는 정삼각형의 꼭지점이다. 파리-루르드 간은 TGV로 이동하기 때문에 별로 힘이 들지 않지만 루르드-로마 구간이 난제였다. 아내는 허리가 좋지 않아서 이 구간을 기차로는 도저히 못가겠다고 버틴다. 결국 파리로 다시 나와서 항공편으로 로마로 가기로 했다. 그런데 파리-로마 구간을 항공으로 이동하면 2개국만 보되므로 스위스를 꼭 넣고 싶었다. 결국 파리-로마는 항공으로 이동하고 로마-파리는 기차로 이동하면서 중간의 도시들을 구경하기로 했다. 성지순례라면 이스라엘로 가야겠지만 지금의 정세가 이를 허락하지 않는다.

순 서

날 자

여  행  내  용

소요시간

숙 박 호 텔

비   고

제1일

7/6(금)

07:00 Daegu 발 KE 1500편
07:55 Gimpo 착
12:40 Incheon Intl.발  AF 267편
17:35 Charles de Gaulle 착

00:55

11:55

Paris
IBIS Hotel
14EME Maine Montparnasse
160 Rue de Chateau
33-1-4322-0009

3층 E

새벽에 집을 나서서 7시간의 시차를 가지고 저녁9시가 넘어서 파리의 호텔에 도착했다. 파리에서는 공항 리무진이 퇴근시간이라 예정보다 시간이 많이 걸렸다. 다음에는 출퇴근 시간대에는 리무진을 타지 않아야 겠다. 여러 사람에게 물어 간신히 IBIS(이 곳 사람들은 '이비스'라고 불렀다.)호텔을 찾았다. 골목 안에 위치한 조그마한 호텔이었다. 외양을 보고 식구들이 크게 실망하는 듯하여 민망했다. 짐을 풀고 밖에 나와 이웃 식당에서 저녁 식사를 했다. 방이 좁고 냉장고도 없었다. 침대는 너무 물러서 자고나니 허리가 아팠다. 밤 11시 경에 여행 첫 밤을 파리에서 잠자리에 들었다.
   새벽 2시경 톡톡하는 소리에 잠을 깼다. 밖에는 비가 오고 있었다. 불을 켜니까 방에 비가 새고 있었다. 비가 새는 파리의 호텔 방!  참으로 어이가 없었다.
(마리아는 여관 방을 못 얻어 마굿간에서 예수를 낳기도 했지만) 하여튼 밤중에 프론트에 내려가서 즉시 방을 바꾸었다. 바꾼 방은 조금 큰 것 같았다. 이렇게 여행 첫 날 밤을 지냈다.

제2일

7/7(토)

루부르 박물관, 노트르담,

 

 

 

 p18.jpg p10.jpg p12.jpg p14.jpg p19.jpg p17.jpg p6.jpg p13.jpg
    루부르의 정원     입장을 기다리며    박물관 안에서               박물관의 야경        비너스상 앞에서  노트르담을 배경으로

파리의 첫째 날 관광은 루부르박물관을 제일 목표로 삼았다. 루부르로 가기 전에 기차예약을 하기로 했다. 유럽 기차는 유레일 패스를 가지고 있어도 대개는 좌석 예약을 해야한다. 예약비는 한화로 1인당 3,500원 정도다. TGV 좌석을 예약하는데 좌석이 둘 뿐이란다. 한 좌석은 보조좌석으로 가야 한단다. 여행자가 많아서 3일 전인데도 좌석이 없었다. 혹시 당일에 예약 취소자가 있으면 좌석을 주겠단다. 하는 수 없이 보조좌석으로 예약을 마쳤다.

오전에 루르드 기차표 예약등으로 시간을 보내고 11시 경에 루부르 박물관에 도착하니 벌써 줄이 200m나 되었다. 2시간을 기다려 겨우 입장할 수 있었다. 루부르 박물관은 몇 해가 걸려도 재대로 다 볼 수가 없다고 한다. 그만큼 규모에서나 소장품의 질과 양에 있어서 엄청나다. 요즈음도 계속 전시공간을 만들고 새로운 소장품을 전시하는 작업을 계속하고 있었다.

루부르박물관을 관람하고 나왔을 때에는 거의 5시가 되었다. 바로 노트르담으로 향했다. 마침 토요일이라 특전미사가 있었다. 10여년 전 아내와 루르드를 다녀 오다가 그 날도 노트르담에서 미사참례를 했는데 그 날은 마침 '주의 공현 대축일'이라 장엄미사를 드렸다. 미사 후에는 퇴장노래로 파이프 올갠의 연주가 있었다. 얼마나 장엄하고 아름다운 연주였던지 지금도 그 때의 감격을 잊을 수 없다. 그 때의 좋았던 기억을 가지고 이번에도 기쁜 마음으로 미사참례를 하려고 성당 안으로 들어가는데 못 들어가게 막는게 아닌가. 곧 미사가 있기 때문에 성당 가운데로는 못들어 오게 막았다. 관광객이 너무나 많아 막지는 못하고 가운데 기둥을 경계로 안에서는 미사참례할 신자들만 들어가고 관광객들은 가쪽으로 돌아서 구경만 해야한다. 우리는 신자라며 미사참례하러 왔다고 하면서 당당하게 안으로 들어가서 자리를 잡고 앉았다. 마치 세례 받은 신자들만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할 때 우리도 세례 받은 신자라고 하면서 천국문을 들어서는 기분이었다. 성당 안에서는 촬영을 못하게 해서 증명사진이 없다. 밖에 나와서 촬영을 했다. 유럽에서는 박물관이나 성당 등지에서 촬영을 금하는 곳이 많다. 특히 프라쉬 사용을 엄격히 금하고 있다. 강렬한 빛에 의한 미술품의 손상을 막기 위해서이다.

제3일

7/8(일)

몽마르뜨르, 에펠탑, 상제리제 거리, 개선문, 꽁꼬르드광장.

 

 

   p21.jpg p2.jpg p20.jpg p22.jpg
         몽마르뜨 화가들의 거리              빠리의 샬롱          밤의 빠리
   여행 제3일 째, 오늘은 제일 먼저 몽마르뜨로 갔다. 하얀 대리석의 웅장한
예수성심대성당이 언덕위에 서 있다.  “1870년 예수성심대축일에 프랑스가 프러시아 공격에서 살아남을 수 있도록 하고자 파리 몽마르트르 언덕에 세운 예수성심대성당(샤크레 쾨르 대성당)에서는 오늘도 참회와 속죄의 성체조배가 주야로 끊이지 않고 있다.”  파리에서는 가장 높은 언덕위에 세워져 온 파리를 내려다 볼 수 있다. 성당 앞 계단에는 전 세계에서 모여든 관광객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이들을 상대로 즉흥 연주가 이어진다. 째즈와 세계 여러나라의 음악들이 연주된다. 연주가 끝나면 모자를 돌린다. 우리도 한 모퉁이에 앉아서 음악을 들으며 가져간 빵으로 점심을 대신하였다.

성당 옆 골목에는 상점이 즐비하고 조그마한 광장에는 화가들이 장사진을 치고 있다. 여행자들을 상대로 초상화를 그려주기도 하고 파리의 풍경을 그린 그림을 팔고 있다. 이들 중에는 파리에서 그림 공부를 하는 한국인 유학생들도 있다. 이들 중에서 미래에 세계를 빛 낼 대 화가가 나올 수도 있다. 그림에 대한 안목이 있는 사람들은 잘 골라서 사 두면 훗날 명품소장가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p7.jpg

p8.jpg

p9.jpg

p11.jpg

p16.jpg

p4.jpg

 

에펠 탑

샹제리제에서 개선문을 배경으로

꽁꼬르드 광장

너무 지쳐서

 

 에펠탑 아래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후 사진 촬영을 위해 또 걸었다. 에펠탑을 찍으려면 1km정도는 멀리 떨어져야 한다. 에펠탑을 거쳐 지하철을 타고 개선문으로 왔다.

상제리제 반대편에 내려 걸어서 상제리제 거리로 왔다. 증명사진(?)을 찍고 지쳐서 햄버거 집에 잠시 앉았다. 맥도널드 햄버거 집인데 아마도 전 세계 점포 가운데 매출 1위가 아닐까(?) 우리 끼리 생각해 봤다. 올 때마다 사람들이 붐볐고 전 세계에서 사람들이 몰려드는 곳이니 말이다. 그리고 대개 배낭족들은 이렇게 햄버거로 한 끼 식사를 떼우기도 하고 또 다음 식사를 위해서 미리 준비해 가기도 한다.

지하철을 타고 꽁꼬르드 광장에 왔다. 얼마나 돌아다녔던지 아내의 발에는 물집이 생겼다. 그러다가 지쳐서 길가에 주저 앉았다. 94번 버스를 타면 Montparnasse 로 갈 수 있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버스가 오지를 않는다. 가게에 가서 물어보니까 주일에는 94번 버스는 운행을 않는단다. 그것도 모르고 30분이나 기다렸으니! (나는 옛날 생각만 하고 길을 안내한다고 했지만 10년 전이라 정확성이 없었다. 그래서 고생만 시킨다고 식구들의 불평이 대단했다. 나를 믿지 못하겠단다.  길가는 사람들에게 길을 묻지 않는다고 잔소리가 대단했다. 남자들은 왜 남에게 묻기를 그렇게도 싫어하느냐면서 이상하단다. 다른 남자들도 그런지 모르겠지만)

아침에는 새소리에 잠을 깬다. 파리는 인구가 1천만이 넘는 거대 도시인데도 시내에는 공원과 가로수등 나무가 많고 공해가 적다. 그래서 도심에서 조금만 주택가로 들어서면 나비를 볼 수 있고 매미 소리, 새들의 노래 소리에 뀌가 따가울 정도이다. 우리는 자기 집만 가꾸지만 선진국에서는 모든 사람들을 위해 도시를 가꾼다. 우리는 가로수를 심어도 자기에게 불편하면 잘라 버리고 길거리에 예쁜 꽃을 심어두면 파서 자기 집에 가져 가 버린다. 우리에게는 '우리'라는 말은 있어도 '우리 의식'은 없다. 서구인들은 '나'라는 단수 1인칭을 쓰지만 '공동체 의식'은 철저히 가지고 있다. 우리의 이런 모습이 서양인들에게도 이제 잘 알려져 한국사람들은 더불어 상종을 못할 족속들로 그들의 눈에 비쳐지고 있다. 10년 전만 해도 코리언이라고 하면 88올림픽을 들먹이면서 반겨주었는데 지금은 코리언이라면 멸시 당하기 일쑤다. 한 때는 일본인들을 경제동물이라고 비천하게 여겼지만 그래도 그들은 돈이 있는데, 한국인들은 돈도 없으면서 안하무인격으로 재 멋대로이니 멸시를 당할 수밖에. 그야말로 졸부들이 꼴뚜기 행세를 하는 바람에 한국인이라면 한꺼번에 무시를 당하고 있다. 어떤 호텔에서는 아예 한국인 사절이라는 팻말을 써 붙인 곳도 있다.
세계화 시대에 영어만 안다고 세계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 세계인들과 더불어 사는 법을 배워야 할 것이다.

제4일

7/9(월)

10:10       TGV Montparnasse 발 TGV
15:47        Lourdes 착
p5.jpg
TGV 안에서  
I
nformation Center에서 성모발현에 관한 Video 관람, 발현성당에서 미사참례.

5:37

Lourdes
 
수녀원에서 경영하는
여행자의 집  쁘띠 꼬방

숙박비 : 1인×1박3식=160fr
1,440-90 =1,330
(1식=30fr)

 예약비 1인 
 EUR 3.05

오늘은 루르드로 가는 날이다. 10:10 기차이지만 좌석이 없어서 한 좌석은 보조석으로 예약을 했다. 당일까지 취소하는 사람이 있으면 정식좌석으로 바꾸어 주겠다고 해서 일찍 서둘러 출발준비를 했다. 새벽같이 일어나서 식사를 했다. 식당에는 우리밖에 없었다. 아직도 바깥은 캄캄한데 다행이 몽빠르나세역이 가까워 걱정은 안해도 된다. 프론트데스크에도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소리를 질러 깨워서 check out을 요구했다.

이 호텔에서는 끝까지 좋지 않은 인상을 가지고 떠나왔다. 이 호텔은 아침식사를 하면 따로 계산을 해야한다. 미리 포함된 가격이라면 이왕 지불한 비용이니 아까워서라도 꼬박꼬박 챙겨서 식사를 했겠지만 아직은 여행 시작이라 준비해 간 밥과 라면, 반찬 등이 있어서 뜨거운 물만 얻어와서 방에서 끼니를 때웠다. 결국 3일 동안 3식구가 호텔 아침은 출발 하는 날만 했다. check out할 때 식사를 묻기에 호텔 식당에서 식사를 하지 않았다고 말 했는데도 계산서를 보니까 식사를 9번(3인×3일) 한 것으로 찍혀나오지 않는가. 항의를 했더니 무어라 중얼 거리면서 다시 계산서를 찍는다고 컴퓨터를 괞히 이리저리 만지더니 짜증을 내면서 현금으로 차액을 내 주었다. 프랑스도 모두가 신사는 아니었다. IBIS 라는 이름이 파리에는 대단히 많았고 외양으로는 그다지 나쁜 호텔이 아닌 듯 보였다. 아마 큰 체인인 것 같았다.  그런데 우리가 묵었던 IBIS는 나쁜 인상을 우리에게 남겼다. 앞으로 여행가는 분들도 계산서를 그냥 요구하는 데로 지불하지 말고 자세히 챙겨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제5일

7/10(화)

침수, 동굴미사, Partres 순례, 밤에 촛불행렬

 

 

 옥실리움
 점심초대

lourdes6.jpg

lourdes7.jpg

lourdes4.jpg

lourdes8.jpg

lourdes5.jpg

lourdes9.jpg

lourdes10.jpg

루르드중앙광장

정화수를 받으며

옥실리움 정원

쁘띠꼬방 정원

 촛불행렬    

빠뜨레 마을성당마당의 가족묘지

벌써 집을 떠난 지 5일째가 된다. 루르드에서는 여름 순례철이면 매일 오후 3시에 성체행렬이 있다. 동굴에서 시작하여 경내를 한 바퀴 돌아 광장에서 성체강복으로 끝난다. 매일 저녁 9시에는 촛불행렬이 있다. 촛불행렬은 동굴에서 시작하여 지하성당에서 끝난다. 이러한 행렬에 참여하면서 마치 별로 힘들이지 않고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마치 세례 받은 신자들은 하느님 나라의 백성이 되었고 이로 인해 교회를 통해 보다 쉽게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을 얻은 것과 같은 것이 아닐까? 스스로 대열에서 이탈하지 않으면 공동체의 일원으로서의 자격을 잃지는 않게 되는 것이다.

루르드에는 성모님께서 주신 샘물이 있다. 지훈이가 작은 물병에 일일이 물을 받고 있다. 성모님께서는 "이 물을 보속과 회개의 뜻으로 씻고 마셔라" 라고 하셨다. 이 물은 그래서 정화수라 할 만하다. 흔히 루르드 기적수 또는 성수라고 하는데 이런 표현은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이 물이 기적을 이르키지도 않고 이 물이 거룩한 물은 더더욱 아니다. 보통의 물과 똑 같다. 이 물을 병에다 담는 것은 성모님께서 찾아주신 물이니 루르드에 가보지 못한 분들에게 기념으로 조금씩 나누어 주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가끔 이 물을  병자들에게 나누어 주면서는 마치 이 물을 마시면 병이 낳을 수 있다는 듯이 설명을 하는데 그것은 크게 잘못하는 일이라 생각한다. 루르드에서는 오늘  날에도 치유의 기적이 일어나는데 그것은 전적으로 하느님의 뜻에 의한 것이지 이 물로 인한 것은 결코 아니다. 루르드에서는 보통 성체강복 때에나 영성체 때에 기적이 일어나는 경우가 제일 많다고 한다. 하여튼 우리도 돌아와서 친구들에게 나누어 줄 물을 받아 왔다.
 여기서부터 물을 받아서 이태리와 스위스 등지를 열흘 정도 더 여행하면서 혹시나 물이 샐까봐 큰 트렁크 속에는 넣지 못하고 들고 다녔으니까 우리는 친구들을 위해 큰 수고를 한 샘이다. 혹시 받는 분들은 작은 물병을 보고 하찮게 생각하실지 모르지만 그 작은 물을 전하기 위해 우리가 큰 수고를 했음을 알아주었으면 한다.

 이날 점심은 옥실리움에 초대를 받아 프랑스식 정식으로 대접을 받았다. 내가 우리 식구들에게 유럽 정통요리를 맛 보이지 못한 것은 비싼 값 때문이었는데 옥실리움의 친구들 덕분에 우리 식구들에게 프랑스식 음식을 맛 보일 수 있었음을 고맙게 생각한다. 위의 걸상에 앉아서 찍은 사진은 옥실리움 정원에서 성모 동굴 쪽을 향하여 촬영한 것이다. 얼마나 아름다운 풍경인지 마치 천국에 온 듯 하다.

제6일

7/11(수)

오전 동굴미사. 오후 Gavarni 하이킹

 

 

 

lourdes1.jpg lourdes2.jpg lourdes3.jpg lourdes11.jpg
  옥실리움에서 점심 대접을 잘 받고 오후에는 가바니로 드라이브를 했다. 10년전 쯤에 루르드에 갔을 때, 그 때는 겨울이었다. 그 때에도 하루 틈을 내어 가바니로 드라이브를 했다. 떠날 때에는 날씨가 화창했는데 가바니에 도착을 하니까 눈발이 내리고 길은 빙판이었다. 저 멀리 보이는 피레네는 절벽이 완전히 어름병풍 같았다. 여름에도 만년설을 이고 있는 이 산 봉우리는 해발 4000m가 넘는다. 그 때는 관광객이 아무도 없었고 우리 일행 네 사람 뿐이었다. 까페에서 따뜻한 커피를 마시며 눈 내리는 산 중에서 보낸 장면이 너무나 낭만적인 분위기여서 오래도록 우리들의 기억에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있었다. 우리가 그 때의 추억을 잊지못함을 아는 박 세레나선생(위의 오른 쪽 사진)은 이번에도 우리를 이 곳까지 안내를  해주었다. 그러나 이 날도 구름이 끼어 정상을 제대로 보지못했다.

제7일

7/12(목)

 07:38 Lourdes 발 TGV
13:45 Paris Montparnasse 착

17:00 Charles de Gaulle 발 AF 267
18:11 Roma Leonardo da Vinci 착

 6:07

 1:11

Rome
Istituto "Santa Famiglia"
Circonvallazione Appia, 162-00179 ROMA
Tel:06/78-42-455(609)

  기차예약비   EUR 3.05

오늘은 하루 종일 루르드에서 로마로 이동하는데 시간을 다 보냈다. 6시간여를 TGV를 타고 Paris에 도착하자 바로 공항가는 리무진을 탔다. 로마행 Air France가 출발 지연으로 Roma도착이 예정시간 보다 2시간여나 늦었다. 성바오로 수도회의 이가브리엘 신부님이 우리를 마중 나오기로 했는데 너무 늦어지는 바람에 걱정이 많았다. 짐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출구쪽으로 가서 신부님을 먼 발치에서 보고 우리의 도착을 확인시켜 드렸다. 차를 운전해 준 이태리인 수사가 너무 늦어 바쁘다고 보채는 바람에 곤혹스러웠다고 했다. 늦은 밤에 우리들의 숙소로 정해진 Santa Familia Center에 도착했다. 규모나 시설 및 구조가 피정의 집같은 곳이었다. 날씨는 덥고 주위는 시끄럽고 방에는 모기 같은 벌레가 있어 로마의 첫 날 인상이 너무나 좋지 않았다. 몸은 피곤했지만 쉽사리 잠이 오지 않았다.

제8일

7/13(금)

 Vatican 박물관, 시스틴 성당, 베드로 대성당
성모설지전 성당 등 순례

 

 

 

v1.jpg

v2.jpg

v3.jpg

roma3.jpg

roma4.jpg

roma2.jpg

roma1.jpg

roma5.jpg

roma8.jpg

성문

 대성당 안

베드로상

성시몬제대 앞

베드로대성전

성시몬상

바오로성당

설지전

성계단

제8일. 첫 코스로 베드로 대성전을 찾았다. 베드로 대성전의 성년 문은 닫혀있었다. 닫혀진 성문을 만지며 열려 있었을 때 오지 못했음을 아쉬워 하면서 기념사진만 한 장 찍었다. 앞으로 25년 후의 성년 때에나 다시 열릴 것이다. 내 생전에 성문 열리는 것을 또 볼 수 있을까? 천당 문도 한 번 닫히고 나면 그만인 것을!  안드레아가 대성전 안에서 기념 촬영을 했다. 이날 로마의 날씨가 더워서 아침에 호텔에서 미리 반바지 차림으로 나섰는데, 성전 입구에서 관리자들에게 제지를 당했다. 안드레아는 용케도 들어갈 수 있었는데 나는 밖에서 기다려야 했다. 여자들도 소매가 없는 옷이나 너무 짧은 치마나 바지를 입고는 들어갈 수 없었다. 전례에 참례하는 것도 아닌데 엄격하게 단속을 했다. 여행자들은 미리 알고 가는 것이 좋을 것이다. 성전에 들어갈 때에는 예의에 맞는 복장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로마의 다른 성전도, 아씨시도 모두 복장을 단속하고 있었다. 이런 점에서 요즈음 우리나라의 성당에서는 미사 때에도 옷을 함부로 입고오는 태도를 고쳐야 할 것 같다.

세 번째 사진은 베드로 대성전 안에 있는 성 베드로 사도 상 앞에 선 지훈(대건 안드레아), 네 번째 사진은 성 베드로 대성당 안에있는 성시몬과 성타데오에게 봉헌된 제대이다. 중앙 제대를 향해서 볼 때 제대 바로 왼쪽에 있다. 전국의 시몬 본명을 가진 분들은 이 곳에 갈 때 한 번씩 유의해서 살펴 보기 바란다. 여섯 번째 사진은 라떼라노 대성전 안에 있는 사도 성시몬의 상 이다. <바티깐과 로마 자세히 보기> 오른쪽 끝 사진은 성계단 성당 안에 있는 성계단이다.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의 어머니 성녀 헬레나가 예루살렘에서 옮겨 온 것이다. 예수께서 본시우스 빌라도 총독에게 잡혀가시어 재판을 받으실 때 오르신 계단이다.

제9일

7/14(토)

 Assisi 순례. 수도원 회랑, 지하성당, 성프란치스꼬 무덤, 글라라 수녀회, 성인의 생가, 다미안 성당, 성인이 은둔해서 기도하던 곳, 최초의 수도원.    

 

 

 

 assisi1.jpg assisi2.jpg assisi8.jpg assisi3.jpg assisi7.jpg assisi6.jpg assisi5.jpg assisi9.jpg
 수도원 화랑/성인이 같혔던 방/산속 은둔지와 당시 수도자들이 기도하던 동굴/천사들의 성모마리아 대성당/비둘기/한국신부님

여행 9일 째. 아침 일찍 준비를 하고 아씨시로 향했다. 기차로 다녀오기에는 힘이 들 것 같아서 전날 한국인 가이드를 차와 함께 예약을 했다. 어느 도시에나 관광프로그램이 있는데 로마에서 아씨시 당일 코스 요금은 140,000리라, 유로달라로 72.30 이나 했다. 우리 일행이 가브리엘 신부까지 4명이나 되기에 차라리 대절을 하기로 했다. 한국 여행사에 문의를 하니까 US$ 450~500 이라고 했다. 그런데 한국 음식점에서 만난 가이드와 300 US$로 흥정이 되어 흔쾌히 계약을 했다. 그런데 막상 저녘 늦게까지 수고를 끼쳤고 결혼 한 유학생이라해서 400US$를 지불했다.
 수도원에 도착을 하니 마침 한국인 신부님이 한국 순례자들을 위해 파견되어 있었다.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른 신부님(본인의 요청으로 이름을 밝히지 않는다)의 안내로 수도원 안으로 들어가서 회랑을 통해 시가지와 벌판을 내려다 볼 수 있었다. 전망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하느님이 태초에 "보시니 좋더라"하신 창세기의 말씀을 조금은 알아들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우리 부부도 난간에 걸터 앉아 사진을 한 장 찍었다.   
  가운데 사진은 프란치스꼬 성인이 수도자가 되겠다고 했을 때 아버지가 극력 반대를 했고 성인을 골방에 가두어 버렸는데 그 때 같혔던 창살 있는 방을 지훈이가 들여다 보고 있다. (이 곳은 방이라기 보다는 그냥 공간이라고 하는 것이 좋겠다. 너무 좁고 방으로 다듬어지지 않은 공간이었다).
  보통 순례자들은 잘 못가는 산속으로 성인께서 은둔해서 기도하셨던 곳을 찾았다. 우리나라에도  스님들이 수도하기에 좋은 산 쏙 깊은 곳에 사찰이 있드시 이 곳도 하느님을 만나기에는 그지 없이 좋은 곳이라 싶었다. 지금 건물은 절벽 위에 지어져 있어 멀리 계곡을 바라다 볼 수 있다. 건물 안으로는 미로와 같은 좁은 통로가 있는데 험한 지형에 따라 지어진 건물임을 알게 해준다. 이 곳은 해발 800m 높이로 수바시오산과 성루피노산이 만나는 계곡이다. 아랫 마을에서 걸어서는 한시간 정도, 차로 15분 정도 걸린다. 성인은 이곳에서 기도를 하며 하느님과 대화를 했다.

제10일

7/15(일)

 스승예수회 로마관구 성당에서 주일미사참례.
한인신학원 방문, 베드로대성당 순례.

 

 Sr. Pacis   許米江 수녀
VIA PORTUENSA 739
easa Provinciare PD
00148 Roma
Tel. 06-65 68 69

 

벌써 여행 10일째다. 오늘은 주일이라 센터 식구들이 주일 미사참례를 위해 모두 스승예수회 수녀원에 가기로 했다. 현대식으로 지은 매우 크고 아름다운 성당이었다. 미사를 마치고 몇 분의 한국인 수녀님들과 제일교포 허 수녀님을 만났다. 허 수녀님은 이콘을 전공하시고 현재 작품활동 중이었다. 우리들에게 매우 친절하고 자상하게 대해 주시어 오래도록 우리 가족의 기억 속에 남아있을 분이 되었다. 우리가 한국인 신학원에 간다니까 버스를 몇 차례 바꾸어 타야한다면서 일부러 근처까지 안내 해 주셨다. 그런데도 버스에서 너무 일찍 내려 몇 코스나 걸어서 가느라 골롬바의 발이 수고를 너무 많이 했다. 한인 신학원에서 전달수 신부님과 유학중인 대구대교구의 몇몇 신부님들을 만날 수 있었다. 이 곳에서도 전달수 신부님께서 손수 차를 운전하시어 우리를 바티깐 근처까지 데려다 주셨다. 여행을 하면서 많은 분들에게 신세를 졌다.

바티깐 근처에 한국인 식당이 있었다. 옛 기억을 따라 찾아갔는데 그 식당은 주인이 바뀌어 중궁 식당이 되어 있었다. 2년전 IMF 때 견디지 못하고 문을 닫았다고 했다. 이 중국식당에서는 중국음식과 한국음식을 함께 내 놓았다. 우리는 김치찌게를 시켰는데 얼마나 풍성하게 내 놓던지 정말 배부르게 잘 먹었다. 맛도 우리에게 잘 맞았다. 로마에 있는 동안 3일을 이 식당에 다뎠다. 비빔밥도 대단히 맛이 좋았다. 고추장과 김치도 우리의 입맛에 잘 맞았다. 중국 조선족에게 우리 음식 만드는 법을 배웠다고 한다. 로마에는 조선족 여인들이 한국 식당에 취직해 있는 경우가 많았다. 중국식당에서는 한국음식이 값도 싸고 양도 충분하게 주기 때문에 앞으로 한국 여행자들은 다 이리로 몰릴 것 같다. 한국음식은 대체로 값이 비싸고 양도 충분치 못해서 불만이었는데 이 집에서는 추가 밥도 공짜로 제공해 주었다. 찌게나 비빔밥의 값이 15,000리라(한화로 8,000-9,000원 정도)였다. 한국식당에서는 대개 한화로 15,000원 정도씩 한다.

제11일

7/16(월)

 까따꿈바 순례, 시내관광

 

 

 

 roma6.jpg roma7.jpg roma9.jpg
   지하무덤위의 모습 / 애천   /  원형경기장

11일 째. 오늘부터는 우리끼리 로마순례길에 나섰다. 이 가브리엘 신부님은 오늘부터 휴가를 마치고 공부를 시작하기 때문이다. 버스를 타고 아삐아 가도를 따라 가따꿈바로 갔다. 마침 영어로 안내하는 순례팀이 있어서 그 뒤를 따라갔다. 2,000년전 신자들이 지하 공동묘지를 은신처로 삼아 전례와 집회를 하던 그 신앙을 오늘의 우리는 본받을 수 없을까? 팽이는 매질을 하지 않으면 스러지듯이 신앙도 적당한 매질이 필요한 것 같다. 안일은 사람에게는 아편과도 같다. 한번 맛을 들이면 좀처럼 벗어날 수가 없다. 그래서 옛날에는 고행을 위해 성지순례를 권장했는데, 요즈음에는 성지순례를 호화판 여행으로 변질시키고 있다.

꼴로세움(원형경기장)에서는 초대교회의 수 많은 신자들이 맹수들의 먹이가 되기도 했다. 지금은 화려하고 웅장했던 흔적만이 남아 있다. 수 많은 크리스찬을 박해하던 인물들은 역사의 뒤안길로 살아졌지만 박해 받던 신앙인들은 오늘날에 성인성녀로 오히려 더 추앙을 받으니 현세를 사는 우리에게 큰 교훈이 되고 있다.

로마에는 분수가 대단히 많다. 서양사람들은 옛부터 물장난을 좋아했던가 보다. 애천도 로마의 아름다운 분수 가운데 하나인데 우리에게는 '로마의 휴일'이라는 영화를 통해서 더욱 친근감을 느끼는 곳이다. 이 곳에서는 분수에 동전을 던지면 로마에 다시 오게 된다는 속설 때문에 이곳에 오면 누구나 동전을 던진다. 이 동전을 1년에 한 번씩 거두어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 쓴다고 한다. 그 돈이 얼마나 되는지 지금 정확한 기억은 없지만 상당한 액수라고 기억하고 있다.

외국을 다니다 보면 별 것 아닌데도 사람들이 찾는 것을 볼 때 관광산업은 역시 선전이 중요하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사실, 우리나라의 경관은 세계 어디에다 내 놓아도 손색이 없을 만큼 아름답다는 사실을 외국을 다녀 본 사람들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우리나라에는 관광객이 많이 오지 않을까? 그것은 무엇 보다고 우리만이 가지고 있는 특성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슬픈 서양 흉내만 내었지 우리 고유의 것을 잘 보존하고 가꾸지 못했다. 그리고 아름답고 재미있는 이야기 거리를 만들어 세계를 향하여 홍보해야 한다. 관광을 위해 개발한다면서 자연을 망가뜨리고 우리의 고유한 모습을 흔적도 없이 파괴해 버렸다. 로마인들은 조상 덕분에 잘 산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훌륭한 조상에 훌륭한 후손이 있었기에 조상의 문화유산을 잘 지켜 온 것이 아닐까? 우리는 훌륭한 조상은 있었지만 후손이 못나 반 만년의 문화를 잘 지켜내지 못했다. 우리의 자연도 얼마나 아름다웠던가!  조상들은 그래서 삼천리 금수강산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오늘의 우리 강토를 보라. 아름다운 금수강산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로마에서의 5박 6일을 마치고 내일 아침이면 밀라노를 향해서 떠난다. 로마에서는 성 바오로 수도회의 이가브리엘 신부님이 우리 가족을 안내해 주셨다. 로마에서 이 가브리엘 신부님이 소개한 숙소는 성 가정회(Santa Familia Center)의 회관 이었다. 우리의 피정의 집과 같은 수준이었다. 이 곳에서 5일 동안 숙박했다. 하루 1인당 50,000리라(환화 약 30,000원)를 지불하면서.  미리 예약해 두었던 호텔은 취소했다. 임박해서 취소하는 바람에 하루 숙박비 150US$를 지불하게 되었다. 결과적인 이야기이지만 로마에서는 숙소 때문에 고생을 많이 했다.
  로마의 날씨는 프랑스와 달리 30c 정도로 매우 더웠다. 숙소 주변은 밤새 자동차 다니는 소리에 시꺼러워 잠을 잘 수 가 없을 지경이었다. 게다가 골롬바는 벌레에 물려 온 몸이 성한 곳이 없을 정도였다. 창에는 방충망이 없었고 더워서 창문을 열고 잘 수가 없었다. 로마의 길은 돌을 깔아놓았기 때문에 아스팔트 포장 길 보다 차 다니는 소리가 훨씬 더 시끄러웠다. 그리고 이 집의 규칙이 밤 10시 전에 귀가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로마의 밤 10시는 우리 같으면 초 저녁인데 멀리서 온 여행자들이 로마의 밤 풍경을 즐길 수가 없었다.
   이 집에서 지하철 역까지 빠른 걸음으로 15분 정도는 족히 걸렸다. 매일 나갈 때와 들어 올 때 이렇게 걸어야 하고 관광지 마다 규모가 커서 하루 종일 걷거나 서 있어야 했다. 또 지하철만 이용했기 때문에 옮길 때마다 지하철 역까지 많이 걸어야 했다. 이렇게 걷느라 골롬바와 나는 발에 물집이 생겨 걷는 것이 그야말로 고생이었다. 참으로 고행의 순례길이었다. 이러한 추억들이 집에 돌아와서까지 내내 원망스런 추억으로 남아있다.  

제12일

7/17(화)

 09:30 Roma Termini 발 Euro Star
 14:00 Milano Centrale 착

 4:30

 Milano   Star Hotel
Splendido

 EUR 15.55

 milan4.jpg milan1.jpg milan2.jpg milan3.jpg
    두오모대성당과 광장의 비둘기 / 상가 /        피자를 기다리며
  로마를 출발한 유로스타는 4시간 반 만에 밀라노역에 도착하였다. 이 열차는 10년 전에는 없었다. 내부는 프랑스의 TGV처럼 1등 칸은 옆으로 3칸이었고 바닥에 카펫이 깔려있었다. 2등 칸은 카펫이 없었다. 속도는 190km로 달릴 수 있다. 대체로 TGV보다 못했다.
  밀라노에 도착하자 호텔 check in을 하고 바로 두오모 대성당으로 갔다. 화려한 건축양식에 감탄을 금할 수 없다. 광장의 비둘기는 관광객들의 동무가 되어주었다. 성당 옆에는 유명한 밀라노의 두오모 상가가 연결되어 있다. 로마에서 더위에 지쳐있다가 밀라노에서는 시원해서 좋았다. 로마에서 맛보지 못했던 피자를 밀라노에서 맛 보았다. 피자의 본 고장에서 피자를 맛보지 못할 뻔 했다. 그런데 피자 값 보다 콜라 값이 더 비싸다. 피자 값만 보고 시켰다가 상상외로 비싼 요금에 내역을 물으니까 계산서를 가져다 주면서 이태리 말로 무어라 욕을 하는 듯 했다. 계산서를 보니까 피자 값이나 콜라 값이나 비슷했다.

제13일

7/18(수)

 09:10 Milano Centrale 발
 12:12 Martigny 착
 
s6.jpg s5.jpg
         산악열차를 타고
 14:35 Martigny 발
 16:05 Chamonix Mont Blanc착

 3:02
 2:23 대기
 1:30

EUR 3.05

 Chamonix
Mercure Coralia Chamonix

 s11.jpg

  밀라노를 출발한 기차는 이태리와 스위스의 국경 역에서 잠시 멈추어 스위스 출입국관리의 간단한 질문을 받고 곧장 출발하였다. 이 기차 안에서는 이태리 동전을 쓰지 않았다. 우리 기차는 로잔느를 거쳐 제네바까지 간다. 그러나 우리는 샤모니(인구 19,000명)로 가기 때문에 상 제르바스에서 기차를 바꾸어 타고 마티니까지 가야했다. 여기서부터는 협궤열차를 타고 산 꼭대기를 향해 낭뜨러지를 양쪽으로 하고 달려야 한다. 아래 절벽이 얼마나 깊던지 현기증이 날 지경이었다. 아래 동네 경치를 구경하다가도 커브길에서는 몸을 뒤로 물린다. 기온이 내려가서 차안에 히타가 들어왔다.

  s8.jpg  s7.jpg s9.jpg s10.jpg
       샤모니 역      몽브랑을 쳐다보며    광장의 분수    티롤모자를 쓴 지훈
  마티니에서 샤모니까지는 오른 쪽 빨간 사진의 예쁜 기차를 탔다. 샤모니에는 몽블랑(해발 4807m)이 있다. 취리히에서는 융프라우에 갈 수 있다. 20년전에도 왔다가 날씨가 나빠서 케이블카 운항이 중단되어 올라가지 못했는데 이번에도 날씨가 나쁘다. 늦게사 구름이 조금씩 걷히면서 웅장한 자태를 잠간씩 내 보이는데 그것을 노칠새라 모두가 하늘을 쳐다보고 있다. 일본에서 왔다는 사진작가는 망원렌즈를 몽블랑으로 향해 놓고 구름이 걷히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만 벌써 3시간째 기다린다고 했다. 이렇게 기다리기를 3일째 란다.
  샤모니에서 오래 전부터 갖고 싶었던 티롤 모자를 하나 샀다. 티롤 농부들이 쓰는 이 모자는 비를 맞아도 모양이 변하지 않는다. 알프스의 동쪽 끝자락인 티롤지방의 날씨는 변덕이 심해서 이 곳 사람들은 언제나 외출을 할 때면 이 모자를 쓰고 다닌다.

제14일

7/19(목)

 10:42 Chamonix Mont Blanc 발
 11:20 St Gervais 착
 11:38 St Gervais 발
 12:30 La Roche sur Foro 착
  
s4.jpg  
컵 라면을 맛있게 먹었다
 13:19 La Roche sur Foro 발
 14:05 Geneve Eaux Vives 착

 00:38
 18분 대기
 00:52
 49분 대기
 00:46

 Geneve

Carlton Hotel

 EUR 3.05  

 s1.jpg s2.jpg s3.jpg s12.jpg
                  제네바의 꽃시계와 공원

14일째. 제네바에 왔다. 제네바의 호숫가 공원에 있는 꽃시계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한국 사람들은 사진 찍는데는 선수들이다. 다음은 공원의 벤치에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다. 오른 쪽 사진은 아내가 호텔에서 나올 때 날씨가 추우니 양산을 들고 나오는 것을 잊었기 때문에 나를 거늘 삼아 햇볕을 가리고 있다. 이렇게 가족 끼리 여행을 하니까 너무나 자유롭고 편안해서 좋다. 한국에서 처럼 주위의 이목을 살필 필요도 없다. 어디에서든 가족 끼리의 사랑을 자연스럽게 표현할 수 있어서 좋다. 장난도 치고 정담을 마음껏 나눌 수 있다. 한국에서는 나 자신을 위해서 사는지 남을 위해서 사는지 알 수가 없다. 이사람 저사람 눈치를 보면서도 정작 남의 불편함은 고려하지 않는다. 공중도덕은 지키지 않으면서 남의 눈치는 왜 그렇게 보는지 알 수가 없다.

제15일

7/20(금)

 07:51 Geneve CFF 발   TGV
11:25 Paris Gare de Lyon 착   
     
p3.jpg   p1.jpg
             리옹 역 앞에서
15:55 Charles de Gaulle 발 AF 264
p15.jpg 
 드골공항에서

 

 

 2C

여행 15일째 날. 이제 집으로 돌아 갈 날이 되었다. 아침 8시 경 제네바를 출발한 TGV는 11시 25분에 파리 리옹역에 도착했다. 공항으로 가는 리무진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파리의 마지막 모습을 사진에 담았다. Air France리무진을 타고 드골공항에 도착한 것은 오후 12시 30분 경. 좌석 chek in은 1시에 한다고 했다. 가까이에서 기다리다가 일찍 수속을 마쳤다. 아내가 무릎 관절이 불편하다고 좌석의 간격이 넓은 door side 좌석을 요구했더니 참작을 하여 economy class의 제일 앞 좌석을 주었다. 기내 가방을 놓고 다리를 위로 얹으니 얼마나 편한지 모르겠다. 이렇게 해서 귀국길은 편하게 왔다.

루르드의 박세레나선생도 마침 같은 비행기로 귀국하게 되어 함께 지루하지 않게 잘 왔다. 갈 때에는 서인석 신부님과 동행이었는데 올 때는 박선생과 동행이었다. 이번 여행길은 처음부터 축복 속에서 시작되었다.

제16일

7/21(토)

 09:55 Incheon(Seoul) 착
 13:00 Gimpo 발
 14:50 Daegu 착

 10:30
 00:50

 

 

예정 시간보다 30분 가량 일찍 인천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지금까지 시원하게 지냈는데 한국 땅에 내리는 순간 텁텁한 열기에 후끈한 느낌이었다. 유럽은 지금까지 긴 옷을 입고 다녔는데 우리 땅에 오니까 여름 임을 실감하겠다. 간단한 입국수속을 마치고 밖으로 나와서 리무진으로 김포로 이동했다. 김포까지 리무진 요금은 4,000원. 별로 불편함도 없었고 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대구 내려가는 비행기 예약 시간은 오후 3시였다. 마침 오후 1시 비행기가 좌석이 있어서 일찍 내려 올 수 있었다. 비행기를 타기 직전 갑자기 폭우가 쏟아져서 항공사 직원들이 우산을 바쳐주어도 모든 승객들이 옷을 흠뻑 젹셨다. 이런 상황에서도 승객들을 강제로 몰아세우드시 비행기에 태우는 항공사의 처사에 못 마땅 했다. 그런데 비행기가 이륙하는데 기체가 너무나 많이 흔들려 모든 승객들이 불안에 떨고 있었다. 보통 이륙하고 조금 지나면 구름위로 기체가 올라가기 때문에 맑은 하늘을 볼 수 있는데 이날은 약 30분 가량 구름 속을 심하게 흔들리면서 날았다. 기장으로부터 아무런 안내방송도 없었다. 여행을 떠날 때 단기여행자보험을 들었는데 그 보험이 유용하게 되겠구나 싶을 정도로 불안해 하는데도 아무런 안내방송이 없다는 것은 승객들에 대한 서비스 정신이 하나도 없다고 밖에 볼 수 없다. 30분 가량 지난 후 기체의 흔들림이 약간 진정 되니까 그때서야 안내방송이 나왔다. 다 지난 후에 무슨 소용이랴. 그야말로 '사후 약방문'이다. 대한항공이 승객들에 대한 서비스 정신은 나쁘고 요금은 제일 비싸다면 이 회사가 어떻게 세계의 항공사들과 경쟁해서 살아 남을 수 있을 것인가. 지금이야 여행자가 너무나 많으니까 싼 항공사의 좌석이 다 매진된 후에도 좌석을 팔 수 있겠지만 언제나 여행자가 이렇게 많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외국 항공사들이 속속 우리나라 노선에 진출을 하고 있지 않은가. 우리나라 기업들이 언제까지나 국산품 애용에 매달려 생존할 것인가. 스스로 노력해서 경쟁에서 떳떳이 이겨 살아 남아야 하지 않겠는가.

집에 와서 식구들과 앉아 있으니 여기가 대구인지 제네바 인지 실감이 나지 않는다. 아침에 제네바에서 출발하여 비행기 안에서 짧은 밤을 지내고 곧바로 대구까지 왔으니 어떻게 실감이 나겠는가?!  재미있고 유익했던 여행을 무사히 마치고 돌아올 수 있었음을 하느님께 감사드린다. 이제 즐거운 마음으로 또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서 열심히 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