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사회과학연구」(1988),pp.265-286.

宗敎가 社會福祉思想에 미치는 영향
― 사회복지의 土着化를 위한 연구(Ⅰ)―

경북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박 석 돈


The Influence of Religion on Social Welfare Thought
― Study for Social Welfare Indihenization in Korea(1)―

Park Suk-Don

<Abstract>

We must consider a matter in all its aspects to nationalize social welfare in Korea. I compared some religious factor influences social welfare thought in the East and the West in this report. Social welfare in the West has developed on human dignity and love of the thought of christianity and has worked in a variety of social work for charity.
Buddhism in the East also has the same thought of mercifulness and buddhist alms. But buddhism was discontinued by suppress during the Lee dynasty for five hundred years in our country.
Confucianism has also perfect virtue as like as the love of christianity but it has not thought of equality but inequality between man and woman, old man and young man or the ruling class and the ruled class. So it is on obstacle to developing the social welfare.
And shamanism does not consider that social and nation take the responsibility of community for welfare.
Therefore, for indigenizing social welfare in this country, christianity and buddhism ought to support the social welfare theory and should establish and manage a social work agency and institute.

Ⅰ. 序 論

현대세계는 어느 나라에서나 공통적으로 추구하는 국가목표가 있으니 그것은 민주주의와 복지사회다. 그것은 자유진영이든 공산진영이든 다같이 국가목표로 삼고 있다. 정부형태가 비록 일인독재이든 일당독재이든 간에 스스로 민주국가라고 선언하고 있고, 민주주의의 원칙은 다 같은 주권재민이라는 하나의 원리에서 나오는 것이로되 그 구체적인 형태는 나라마다 다르다. 그것은 주권재민의 이념을 구현하는 방법이 나라마다 다를 수밖에 없는 특수한 문화전통과 국민의식의 수준 등 여러 가지 요인 때문일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복지국가를 목표로 삼으면서도 이를 구현하고자 하는 구체적인 방법들은 나라마다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와 같은 오늘날 복지국가가 어느 나라나 공통적으로 인정하는 가치 일 뿐만 아니라 사회복지의 生成發展의 역사 또한 어느 사회에서나 다소간의 흔적을 찾아 볼 수 있으되 모든 민족이 다같이 각자 고유한 복지이념을 지속적으로 또 만족할 만큼 발전시켜 오지 못했다. 그래서 오늘날 서구 복지선진국들의 앞선 제도와 여러 방법들을 현대에 와서 새롭게 도입하고 배워오는 입장에 있다. 이렇게 볼 때 사회복지를 이 땅에 도입함에 있어 선진제도를 그대로 모방, 이식할 것이 아니라 이 나라 문화전통과 사회여건에 맞는 새로운 형태의 사회복지제도를 확립해야 한다는 것은 누구나 쉽게 생각할 수 있는 문제임에도 우리는 이때까지 이점에 대해서 간과해 온 듯한 느낌이다.

사회복지를 전개하는 일은 각국의 사회, 경제, 문화적인 전통과 분리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회복지도 하나의 사회제도인 한 그 나라의 역사적 사회적 산물인 것이다. 어느 사회나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인간 세상에 갈등과 불만이 없지 않았지만 그 때마다 나름대로의 해결책이 있어왔는데 특히 산업혁명 이후의 여러 가지 사회적 문제에 대해서 제시된 해결책이 바로 사회복지제도인 것이다. 이러한 사회복지가 우리 나라에 있어서는 과연 어떠한 형태로 존재하는 것이 타당한지를, 우리 나라의 사회구조와 사회가치에 비교하여 보면서 우리 나라의 사회에 맞는 복지제도를 모색해야 할 것이다.

오늘날 사회복지를 자선 또는 박애사업과 구분 짓는 것은 「국민의 인간다운 생활」에 대한 국가 또는 사회의 책임을 전제로 한다면 국가의 책임은 법제도의 형태로 구체화되는 것이다. 따라서 사회복지의 토착화를 논하기 위해서는 사회복지 법제의 토착화를 중심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자연스러울 것이다. 이것은 Wilensky & Lebeaux가 말한 사회복지의 두 가지 개념, 즉, 보충적(residual)사회복지와 제도적(institutional) 사회복지 가운데 제도적 사회복지를 말하는 것이 된다. 따라서 본 논문에서 사회복지법제의 토착화를 중심으로 몇 가지 전제조건으로 고려해야 할 점들 중에서 특히 종교가 사회복지사상에 미친 영향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Ⅱ. 社會福祉의 根本思想

1. 人間尊嚴性

사회복지는 인간의 행복을 전제로 하고 있다. 인간은 누구나 스스로 행복을 추구하는 본능을 타고났을 뿐 아니라 원칙적으로 자신의 행복을 구현할 능력 또한 타고난다는 것이다. 그러나 때로는 스스로 이러한 능력을 상실하는 경우도 있다. 특히 오늘날 같은 복잡한 산업사회에서는 자신의 책임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이 이러한 능력을 상실하는 경우가 더욱 많아지게 된다. 이와 같이 개인이 가져야 할 자신의 행복을 구현할 능력이 부족 또는 상실된 경우, 사회 또는 국가는 이를 보충, 보완해 주어야 할 책임이 있다는 사상에서 사회복지는 출발한다. 따라서 궁극적으로 인간은 행복을 추구할 수 있고, 또 행복해야 할 자격 또는 권리가 있다는 사상에서 사회복지가 출발한다고 하겠다.

그러면, 왜 인간은 행복해야 하는가? 왜 자신의 고의나 과실을 묻지 않고 사회는 그 행복을 보장해야 하는가? 하는 질문을 할 수 있다. 이것은 바로 사회복지의 본질에 관한 질문이 된다. 그리고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인간의 천부적 인권, 즉, 인간의 존엄성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또한 인간의 존엄성은 불완전한 인간자체에서는 찾을 수 없고 인간의 본성 안에 내재해 있는 神性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신은 완전한 존재요 절대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상은 동서양의 모든 고등종교에서 다같이 찾아 볼 수 있다.

1) 동양의 인권사상

한 민족의 문화유산은 다기하고 복잡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으며 그것들이 반드시 그 민족의 창작이 아닌 것도 포함될 수 있으나, 오랜 세월을 통한 동화작용을 거쳐서 자기 것으로 되는 것이다. 이러한 뜻으로 불교나 유교가 우리에게는 외부로부터 전래된 것이지만, 오랜 민족사안에 흡수, 동화되어서 우리 사고방식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그러므로 사회복지이념의 바탕이 되는 인간관을 살피기 위하여 한국화 한 불교나 유교의 사상은 물론, 고대로부터 우리민족사상의 밑바탕에 깔려있는 Shamanism, 즉, 무속 안에 나타나는 한국인의 인간관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1) 샤머니즘(Shamanism)

일정한 교리나 조직의 체계를 갖지 못한 원시종교인 샤머니즘은 우리 나라뿐만 아니라 동북아시아의 미개인 사회, 남ㆍ북미의 아메리카 인디언족과 에스키모족, 남양 또는 아프리카의 원주민들 사이에서도 발견되는 범세계적인 주술적 종교현상이다. 이와 같은 샤머니즘은 Animism을 기초로 하고 있다. Anima, 즉, 정령에 연유한 Animism은 모든 물체에 정령이 있다고 믿는 자연숭배 또는 정령숭배의 원시종교다.

이러한 샤머니즘의 사상은 인간의 일체의 생활현상을 초월적인 신령계에 그 근거와 책임이 있다고 보았다. 천지신명이 우리들의 운명과 생활을 지배한다고 믿었다. 길흉화복은 오로지 운명적인 것으로 되어 버렸다. 이러한 운명신앙은 만사를 팔자소관으로 체념하고 신세타령이나 일삼는 무기력하고 나약한 인간이 되게 한다. 그러므로 자기의 생활과 운명에 대해 자신이 주체적인 책임을 지고 결단하려 하지 않는다. 따라서 여기에는 윤리적 계기가 없다. 이와 같은 결정론적인 운명신앙에는 혁명적인 기상이나 진취적인 개혁정신이 꽃 피어날 수 없다.

또 샤머니즘은 우리 민족성을 현실주의적 성격으로 만들어 버렸다. 내세관이 없어 우리의 모든 욕구를 현재에 집결시켜 버렸다. 한국사람은 후세에 천당이나 극락에 가기를 원하기 보다 이승에서 수(壽)와 복을 누리며 사는 것이 소원인 것이다. 그러므로 시간적으로 먼 미래를 생각할 경우에도 내세의 영생보다는 현세적인 미래에 희망을 걸려는 것이 그의 특색이요, 그것이 가족제도와 관련하여 연장된 자기로 생각되는 자손을 통해서 그 이상의 실현을 바랐던 것이다. 나의 미래를 죽은 후의 피안에서 찾으려는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라도 현세적이어서 내가 죽은 후에도 이승에서 살고 있을 나의 자손에게서 찾으려는 것이다.

이러한 샤머니즘의 사상은 우리의 민족성에 뿌리 깊이 남아있어 자기가 일생토록 모은 재산을 자식들에게 유산으로 남겨주는 데만 관심이 컸지 그것을 사회에 환원하는데는 인색했다. 이것은 서구의 사회복지사업이 국가 또는 공공기관의 능동적인 활동 이전에 민간 차원에서 활발하게 진행되었고 또 그 재원의 상당부분이 부자들의 財産遺贈으로 충당되었음을 생각할 때 이러한 샤머니즘의 현세주의적 사상은 아직도 사회복지를 우리사회에 토착화하는데 나쁜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보겠다.

김인회는 현대 무속에서의 인간관을 ①인간이란 자연질서의 범위 안에서 그 질서에 순응하면서 살아가는 존재라고 보는 「合自然的 존재로서의 인간관」②인간은 단독자, 개별자로서는 존재할 수 없고 모든 개인은 반드시 가족이라고 하는 변치 않는 집단관계 속에서만 존재의 의미를 갖는다. 개인이 속해있는 관계구조는 가족공동체의 범위를 넘어서 군락공동체로까지 확대될 수 있고, 넓게는 국가공동체로까지 발전할 가능성도 있지만 일차적으로 모든 인간은 가족공동체 속에서 의미를 갖는 존재라고 보는 「관계 내적 존재로서의 인간관」③인간은 자연질서에의 순응이라고 하는 소극적 윤리와, 가족공동체의 보호와 안전을 위한 희생과 헌신이라고 하는 적극적 윤리를 실천하면서 살아가는 존재라고 보는 「윤리적 존재로서의 인간관」④아무리 괴롭고 불행해도 인간으로서 현세적 삶이 가장 귀중한 것이므로 인간이란 不老不死, 영생불멸, 사후부활, 내세, 해탈 같은 超現世的, 초자연적 세계에 대한 기대가 아니라 삶의 현실에 절대가치를 두고 살아가는 존재라고 보는 「삶의 존재로서의 인간관」등으로 정리했다.

이러한 무속적 인간관을 요약한다면, 사람은 자연 속에 태어나서 가족과의 관계 속에서 살다가 결국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인데 죽을 때가 되면 죽더라고 살아 있을 동안에는 되도록 고생하지 않고, 비애로 심통하지 않고, 불의의 춘사로 놀래지 않고, 주어진 신분에 안정하여 평안히 지내다가 불의의 죽음으로 橫死하지 말고 천명을 다 산 후에 가족들과의 관계를 유지하면서 안락한 운명을 하는 것이다.

결국 우리 나라의 무속의 인간관은 어떤 사상적 뿌리나 이론적 배경은 없다. 따라서 적극적인 인권사상이라든가 인간존중사상도 없다. 다만 공동체의 질서에 순응하고 특히 가족공동체의 안정과 번영을 위해 희생하고 헌신해야 한다는 소극적 사상이 존재할 뿐이다. 여기에는 모든 인간에 대한 평등한 인권, 또는 인간다운 생활을 할 보편적인 권리라든가 적극적인 幸福權이나 사회적 책임으로서의 사회복지사상이 생겨날 여지는 없다.

(2) 佛 敎

한국에 등장한 최초의 세계적 종교는 외래종교로서의 불교였다. 불교는 석가무니가 佛陀(Buddha)가 되는 길을 가르치는 종교다. 그러므로 인간은 누구나 수양과 노력을 통해 불타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Buddha란 깨닫다. 깨친다는 말의 동사형으로 깨친 사람, 깨달은 사람이란 뜻이다. 한자로는 覺·悟字를 써서 覺者 또는 悟者라고 한다.

석가모니가 깨친 진리를 불교에서는 法이라 한다. 불교 교리에서 법이란 매우 중요시되는 것으로 梵語의 Dharma(달마)에서 온 말인데, 이 법은 영원한 이치를 말한다. 이 법은 부처보다 먼저 있었고, 부처가 세상에 나타나거나 나타나지 않거나 관계없이 존재하는 것이다.

이러한 법과 부처와의 관계는 불교교리가 점차 체계화되면서 진리자체인「법」은 우주만물의 바탕으로 해석되고 부처님은 「법」의 인격적인 출현으로 설명되었다. 그래서 우리 눈으로 볼 수 있었던 "인간인 부처님"은 應身佛이라 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진리본체는 法身佛이라 했다.

이러한 불교가 인도에서 발생하여 중국을 거쳐 한국에 전해지면서 신라에서 꽃을 피웠는데 신라의 고승 원효는 이와 같은 관계에 대해 중생이 다 법신불의 분신이어서 "一切衆生 同有佛性"이라고 한 「열반경」을 새롭게 일깨웠다. 그러므로 중생 세계를 모두 교화하여 전체가 부처가 되도록 하자는 菩薩行願을 그는 실천했다. 이점에 있어서 그리스도교의 인간존중사상을 신라의 원효에게서 발견하게 된다. 즉, 창세기의 「하느님 모습을 닮은 인간」과 일체중생은 다 같은 佛性, 즉, 부처님의 성품을 가지고 있다는 사상과는 서로 상통하는 바가 있다. 따라서 불교에서도 그리스도교에서와 마찬가지로 인간존중사상과 만인평등사상을 발견하게 된다.

불교에서는 모든 사람에게 다같이 내재하고 있는 이 불성을 개발하여 부처가 되는 것이 인생의 목표다. 이와 같은 「보편성」은 모든 사람들의 인격 속에 「인간성의 존중」이라는 가치관을 가지게 한다. "나는 너희를 공경한다. 왜냐하면 너희들도 菩薩道를 닦음으로써 성불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고 하면서 만나는 사람마다 지성으로 합장배례하는 法華經에서 볼 수 있는 보살정신은 이와 같은 「인간성의 존중」과 「인격의 존엄성」의 표현이며 실천의 확인이다.

흔히 기독교를 사랑의 종교라고 할 때 불교를 자비의 종교라고 한다. 불심이란 대자대비를 뜻한다. 大慈란 일체중생에게 안락을 주려는 마음이고, 大悲란 일체중생의 고통을 제거하려는 마음이며, 또 대자란 喜樂의 인연을 중생에게 주는 것이며 대비란 離苦의 인연을 중생에게 주려는 마음이다.

이와 같은 자비심의 구체화된 것이 布施이다. "布라 함은 자기의 재산을 남에게 나누어주는 것이며 施란 함은 자기의 욕심을 거두고 남에게 베푸는 것"이라 했다. (惠遠의 大乘義 章 卷十二) 즉, 남에게 재물을 베푸는 것이다. "보시하는 것은 중생을 불쌍하게 생각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며 남을 안락하게 해주기 위함이며 남들에게도 보시의 마음이 생기도록 하기 위함이며, 여러 가지 번뇌를 끊기 위함이며, 有漏를 끊기 위함이다."蕓無讖역 「優婆塞戒經 卷五)

따라서 참된 보시라 함은 "보시를 함에 있어서 보은이 있을 것을 기대하며 행하지 않으며 天人의 속에서 살기 위하여 락(樂)을 누리기 위한 것이 아니며, 美名을 流布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며, 재물을 없애기 위한 것도 아니다. 가진 것이 많기 때문에 하는 것도 아니며 쓸 곳이 없기 때문도 아니며 법이 있기 때문에 또는 친하기 때문에 하는 것도 아니다"(優婆塞戒經 卷五). 다만, 남을 안락하게 해주기 위함이니 자기의 연민의 정과 자비심에서 우러나온 것이어야 한다.

이렇게 볼 때 불교에서는 현재 헌법에서 말하는 권리로서의 복지, 즉, 소의 복지권의 사상을 찾아내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러나 하여튼 불교의 이와 같은 보시는 보살, 즉, 불도수행자가 행하는 成佛에의 길이며 六道行業 중에 첫째가는 德目이다. 일체의 자선 또는 구제사업은 이와 같은 布施行으로 나타난다.

이렇게 불교는 기독교에 못지 않은 훌륭한 인간존중사상과 보시정신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지속적이고 조직적인 사회복지사업으로 발전시키지 못했음은 실로 유감이다. 그것은 불자들의 개인적인 자비심에서 우러나는 보시는 행 했으되 불교라고 하는 종교단체가 조직적인 사업을 수행하지 않았기 때문이며 그것은 동양인들의 비조직적인 사고방식과도 관련이 있을 것이다.

(3). 儒 敎

근대 우리 나라를 지배한 사상은 유교였다. 유교는 한문이라는 어려운 문자를 통해 전해졌고 따라서 사회적으로 양반계급, 식자층에서만 그 연구가 가능했다. 그들은 가족과 국가 속에 권위를 인정하고 민중은 君主에게, 어린이는 부모명령에, 아내는 남편에게, 연소자는 연장자에게 복종하는 것만이 사회질서를 유지하는데 불가결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유교는 확실히 개인의 자유보다 권위를 먼저 앞세운 사상이라 하겠다. 유교에서 본 인간관은 하나의 독립된 인격자로 본 평등한 인간관이 아니고 종적관계에서 본 불평등한 차별적인 인간관계이다. 그곳에는 개성이 뚜렷한 자아의 존재를 인정함이 없고, 양반과 상놈의 인간관계요 남자와 여자의 신분적 계급관계요, 연장자의 엄한 상하관계요, 아버지와 자식간의 복종관계다. 인간을 어떤 상하지배 피지배의 관계에다 두고 보지 않으면 불안한 심리였다.

유교는 六經(詩, 書, 禮, 樂, 易, 春秋)을 기초로 하여 仁義의 道를 가르치는 孔子의 종교다. 이러한 유교사상은 중국철학의 여러 학파 속에서 그 주류를 형성하여 맹자 이후 중국 學術史上 정치에 있어서나 교육에 있어서나 사회에 있어서 주류를 이루어 왔을 뿐 아니라, 한국, 일본에 이르기까지 천수백년을 통해서 현실사회에 실천철학으로 큰 영향을 미쳐왔다.

공자가 내세운 덕목은 仁·義 ·忠·信·孝 등 그 모두가 상대적인 가치인 데는 예외가 없다. 특히 이 가운데 최고의 덕으로 「仁」을 들고 있으며 공자의 사상 또는 儒家의 사상이란 「仁」에 귀결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仁이 두「二」자와 사람「人」자의 會意文字이듯이 사람과 사람사이의 덕목이다.

仁은 한 마디로 말하여 「사람」이라고 중용이나 맹자에서 말하였다(仁者人也·中庸, 仁也者人也·孟子) 즉, 인(仁)과 인(人)은 같은 개념으로 보았다. 사람을 떠나서는 인을 말할 수 없으나, 사람이 모두 仁하다는 뜻은 아니다. 사람이 人身을 가지고 사람답게 될 수 있는 것은 仁이 있음으로써 이니, 사람으로서 不仁하다면 사람답지 않은 것으로 본다.

공자는 사람이 인해야하는 이유를 天에서 찾고 있다. 공자는 그것을 수호하기 위해 자신의 생명까지도 바칠 수 있는 존재로 天을 인식했다. 天을 말하기를 "원리의 원리요, 모든 생명의 원천으로 極尊無對한 것이며, 만물을 命하는 자요 여하한 物에도 명령받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우리는 흔히 그리스도교의 사랑과 불교의 慈悲와 유교의 仁을 말한다. 그리스도교의 사랑의 근원은 하느님이요, 불교의 자비는 부처님에게서, 유교의 仁의 근원은 天에서 찾고 있다. 결국 仁은 天의 至上命令인 것이다. 인이 있음으로써 사람다워지고 不仁하다면 사람답지 않다고 했으나, 그러나 사람답지 않다고 해서 仁性이 없다는 뜻은 아니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德이 있다고 하겠지만, 그 덕이 밝아서 成德이 되지 않고서는 원만한 인격을 형성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인은 인격을 원만하게 이룰 수 있는 모든 요소를 겸비하고 있으며 사람 누구에게나 주어진 것으로 본다.

이러한 유교의 仁은 禮로서 구체화되는데 그것은 결국 나와 타인과의 관계규범인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유교사상은 윤리적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유교의 윤리는 父子, 君臣, 夫婦 등 작은 집단이나 사회에서 통용되는 것이고, 양심 혹은 공중도덕 사회윤리 같은 큰 집단이나 사회를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라 가족단위를 중심으로 하고 그 다음 통치자와 피치자간의 통치적 도의를 말한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유교의 인간관은, 유럽의 기독교사상이 개개의 인간을 자유롭고 평등한 존재로 보고, 누구라도 비인간적 처우로부터 해방되어야 한다는 인간존엄사상과는 차이가 있다. 따라서 유교사상에서도 이웃에 대한 동정이나 왕의 백성에 대한 구휼이 있었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베푸는 쪽에서의 선심일 뿐 의무 또는 책임이란 사상은 생겨날 수 없었다. 물론 善政을 베푸는 군주는 덕 있는 왕으로 칭송 받았고 또 그것이 王道라고 했지만, 그 자체가 책임이라고 하는 적극적 사고는 결여되어 있었다. 이러한 유교사상이 이조 5백년을 지배해 오면서 사회복지사업의 관주도화를 초래하게 되었고 사회복지의 공행정과 이의 법제화가 발달하게 되었다.

2) 西歐의 人權思想

서구에서 생성, 발달한 사회복지의 사상은 바로 기독교사상에서 나온 것이오 기독교 사상은 신이 인간을 창조했을 뿐 아니라 인간을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했다(창세기 1,26∼27)는 것이다. 이 「인간이 하느님의 모상」이라는 사상이 그리스도교 인간관의 토대를 이루고 있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그리스도교적 인간관이 근세에 있어서의 인격존중의 이념이 된 것이다.

그리스도교 인간관에 의하면, 인간은 누구나 이성을 가지고 있으며 자유를 향유하고 있다. 여기에 인간만이 하느님의 모상이라고 일컬어지는 이유가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인간이 신이 될 수는 없다. 다만 우리 인간 속에서 神性과 비슷한 것을 본다. 인간만이 그 사람 각자의 기량에 따라서 신의 모습을 나누어 가질(participate)수 있다.

이와 같은 "인간은 하느님의 모상을 닮은 영혼을 가지고 있으면서 동시에 현실세계를 살아가는 육체를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인간은 그 全人間性이 있어서 연구되어야 한다는 것이 성토마스의 특유한 이념이었다. 인간은 마치 그 영혼이 없으면 인간이 아닌 것과 꼭 같이 그 육체가 없이는 인간이 아닌 것이다. 하나의 육신은 인간이 아니며, 그와 동시에 하나의 유령도 인간이 아니다."라고 체스터톤(G.K.Chesterton)은 말하면서 "성토마스는 한 인간의 영혼이 그의 영혼인 것과 같이, 그의 육체도 그 사람의 것이라는 사실을 단호히 주장하였다. 그리고 인간은 오로지 그 두 가지에 의해서만 균형이 잡히고 통일되는 것이라고 하였다."고 했다.

또한 "하느님의 모습을 닮은 인간"이란 창세기의 말씀은 창세기 9/6의 "사람은 하느님의 모습으로 만들어졌으니 남의 피를 흘리는 사람은 제 피도 흘리게 되리라"는 말씀과도 통한다. 이 말씀에 따르면 동료 인간을 침해하는 자는 하느님 자신을 침해하는 것이 된다. 왜냐하면 인간은 누구나 죄로도 지워질 수 없는 하느님 모상을 자신 안에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동료 인간을 돕는 행위는 바로 하느님을 돕는 행위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사상은 신약성서에서 더욱 구체화되어 나타나는데 마태오 복음 25/40의 "너희가 여기 있는 형제 중에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 준 것이 곧 내게 해준 것이다."는 말씀으로 명확해지고 있다. 그래서 성토마스는 비록 이웃에 대해 선을 베풀지라도 그것은 자기 이웃을 향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숨어 계시는 하느님께로 향하는 것이라고 하고 있다. 따라서 모든 인간은 하느님의 모습을 가졌기에 다같이 평등하며 존엄한 인격을 가졌고 인간답게 살 권리를 가졌다고 보는 것이다. 이렇게 인격사상이 노예나 심지어 죄인들에게까지도 적용되었던 것이다.

토마스는 인간이 존중받아야 할 가치가 있다는 이유를 두 가지로 들고 있는데, 그 하나는 전적으로 은총의 선물인 인간의 본성 자체가 가지고 있는 가치이며, 다른 하나는 공동선과 관련된 것으로 어떤 사람이든 비록 덜 착하고 배운 바가 적다 하더라도 공동선에 기여할 수 있음으로 해서 그것 때문에 사회적으로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토마스가 말하는 은총의 선물이란 바로 하느님의 모습을 닮은 인간의 가치를 말하는 것이다. 그 사람이 설사 공동선에 아무런 기여함이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해악을 끼치는 존재라 해도 그 본성 안에 가지고 있는 그 가치 때문에 사회적 가치도 인정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聖토마스는 비록 이웃에 대해 선을 베풀지라도 "그것은 이웃을 향하는 것이 아니라 이웃 안에 숨어 계시는 하느님께로 향하는 것"이라고 하고 있다.

인간 존엄성에 대해 토마스는 결국, 하느님의 모습을 닮은 인간은 본성 자체로서 존엄한 것이고, 아담의 범죄 후 종의 신분으로 추락되었던 인류가 성자의 降生으로 하느님을 아빠-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자녀의 신분으로 높여 짐으로써 모든 인간은 하느님의 자녀로써 존중받을 가치가 있다는 것으로 집약된다.

오늘날 사회복지라는 입장에서 인간을 볼 때도 죽은 후에 구원받을 인간을 보는 것이 아니라 현세를 살아가는 인간을 보는 것이다. 따라서 이원론적인 입장에서 "육체는 잘 말해서 영혼의 도구이고 나쁘게 말하면 영혼의 감옥이나 썩어버릴 무덤"으로 간주해서는 인간의 가치를 거기서 찾아볼 수 없고 토마스와 마찬가지로 인간을 일원론적으로 보고 또 인간 가치를 인간 본성 안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2. 慈悲·仁·사랑

1) 儒·佛敎의 慈善觀

흔히 불교는 慈悲, 유교는 仁, 그리스도교는 사랑의 종교라고 말한다. 동양사상 특히 극동지역의 사상을 지배해온 불교와 유교의 가르침인 慈悲와 仁은 결국 그리스도교의 사랑과 그 맥을 같이 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불교의 자비와 유교의 인도 결국은 인간 존중사상 즉, 인간의 佛性 또는 天의 인간에 대한 至上命令이라는데 뿌리를 두고 있음은 그리스도교 사상의 "하느님 모상을 닮은 인간"이므로 인간은 존엄하다는 사상과 그 바탕을 같이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인간존엄사상의 근거가 불완전한 존재인 인간 자신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완전한 존재인 절대자에게 근거를 두고 있으므로 인간은 서로간에 자비를 베풀어야 하고 仁을 베풀어야 하고 서로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자비·인·사랑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그 구체적인 표현이 사회적, 경제적 또는 인간적 약자에 대한 여러 가지 형태로의 나눔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이러한 나누는 행위는 나누는 자의 恣意가 아닌 義務라는 사상을 다같이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시대의 흐름에 따라 가진 자의 의무 또는 책임이라는 생각은 약화되고 점차 그 순수성이 흐려진 경향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다같이 나타난 현상이었다.

유교와 불교의 窮民救助에 대한 이상은 요컨대 모두 당초에는 후세에서 보는 바와 같은 보수를 구함을 목적으로 하는 불순한 것이 아니라 국민으로서 또는 사회인으로서 마땅히 행할 당연한 의무로서 실현하고, 그 결과로서 자기에게 초래될 이해득실 같은 것은 이를 天命에 맡기고 사리사욕을 탐하는 心算으로 행동한다는 불순한 동기는 조금도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후세에 와서 점차 타락현상으로 나타난 것은 무속의 기복신앙이 불교의 적선사상과 결합하여 자신과 가족의 보호를 목적으로 하는 保身的, 求報的 이념을 가지고 궁민구조를 행하는 폐습이 생긴 것이다. 그뿐 아니라 이러한 타락현상은 빈번히 되풀이된 禪讓放伐의 易姓革命으로 인해 정치의 이상을 주권자가 그 지위를 유지하기 위하여 인심을 얻고자 하는데 두는 불순한 것으로 추락시킨 데서도 찾을 수 있다.

사실 동양적 구제사업의 특색은 중국 上古時代에 이미 완성을 보아 후세에 수범(垂範)했다고 하는 국가사회행정의 체계로서의 구황(救荒), 보시(保息) 등 휼구(恤救)와 안민(安民)의 제도이며 이것은 중국 역조(歷朝)에서 성쇠의 차이는 있을망정 꾸준히 계속되어 왔고, 우리 나라 삼국시대이래 대개 漢, 唐, 宋, 明의 제도를 차례로 도입하여 유교와 왕가인정으로서 國是를 삼았던 우리 나라에서도 歷朝 대부분 그 예를 답습하였던 것이다. 이와 같이 국가의 구제사업도 그 순수성이 아닌 인심을 모으는 수단으로 삼았던 것이다. 그 한 예로 荀子의 "말이 놀래어 안장을 흔들면 군자가 안장에 편안히 앉아 있을 수 없고, 庶人이 정치에 놀래면 정치에 종사하는 君子가 그 위치에 편안히 있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말이 안정을 흔드는 경우에는 이를 달래어 정지시키는 것이 상책이고 서인이 정치에 시달리는 경우에는 이들에게 施惠하고, 賢良을 등용하고, 독경(篤敬)의 기풍을 기르고, 효제(孝悌)의 정신을 일으키고, 고과(孤寡)를 수양(收養)하고, 빈궁자를 도와서 이들을 달래는 길밖에 없는 것이다. 이와 같이 하면 서인(庶人)이 정치에 안심하는 것이고 서인이 정치에 안심한 연후에야 비로소 군자가 그 위치에 안정되는 것이다."라고 한 것은 바로 이러한 수(隨)락(落)사상(思想)의 단적인 표현이라고 했다. 여기에 덧붙여 중국에서 생겨나 도교 등의 공리적 사상의 영향을 받아 후세에 사회도덕의 저하를 가져와 모든 행위의 동기는 인과응보로서 공리적으로 이를 판단하고, 자기 이익만을 유일의 목표로 삼는 자기본위주의로 화하는 경향이 있었다. 즉, 정치적으로는 인본주의로부터 정략주의로, 종교적으로는 자비주의로부터 타산주의, 보시주의(布施主義)로부터 구보주의(求報主義)로 타락하게 되었다. 그러나 불교에 있어서는 자비와 보시의 사상이 후대에 이르기까지 수 많은 고승들로 이어지면서 개인적으로나 종단의 차원에서 또는 정치사상을 지도해오면서 국가의 차원에서 자선사업을 끊임없이 수행해 왔다. 따라서 우리 나라의 자선사업은 불교의 성패와 운명을 같이 했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숭불정책을 쓰고 불교를 국교로 하여 보호하고 장려한 고려시대에 사찰은 왕과 귀족과 평민이 시납(施納)한 전지(田地)와 노비, 세민(細民), 수원승도(隨院僧徒)의 인력을 소유하여 매우 부유하였으며, 그러므로 때로는 자체적으로 승병도 거느릴 정도였다. 그리고 사원의 토지에는 면세특권이 주어졌으므로 2중 3중의 가렴주구를 피하여 자기 토지를 가지고 사원에 의탁하는 농민도 많았다. 이와 같이 사원이 부유하였으므로 흉년이 들면 사찰은 대개 기민구호의 중심을 이루었다.

고려 11대 문종 18년(서기 1064) 3월에는 제하여 "지난해에는 큰물이 져서 추곡을 손상시켰으므로 백성들을 생각할 때 급히 구휼하여야 할 것이므로 태복경(太僕卿) 민창소(閔昌素)로 하여금 이 달부터 5월까지 開國寺 남쪽에 음식을 마련하여 궁민에게 베풀도록 하라."고하였다. 4월에 또 제하여 "5월 15일부터 7월 15일 까지 臨津 通院에서 죽과 소채를 준비하여 길가는 사람에게 베풀라."고하였다. 이 두 가지 사례는 개국사와 臨津縣 普通院의 두 사찰이 기민구제, 行旅者給食의 장소로 지적되고 있는데, 이것은 전국의 사찰, 사원들이 모두 그러한 역할을 했다고 미루어 해석해도 무방한 것이다. 이것은 중세, 서구에서 교구 또는 수도원이 구제사업을 수행한 것과 꼭 같은 양상이었다.

고려시대의 이러한 救濟史는 기록이 충분하지는 못하였지만 그래도 끊어지지 않고 나타난다. 즉, 毅宗 6년(서기 1152년) 6월에는 같은 開國寺에서 굶주린 이들과 역질에 걸린 이들에게 음식을 베풀었고, 毅宗 19년(서기 1165년) 5월에는"왕이 玄化寺에 행차했다가 돌아와서 궁에서 無遮大會를 열었다. 무차대회는 상하계층과 빈부의 간격을 초월한 모임으로 함께 식사도 나누는 불교의 의식이다. 이러한 예는 불교를 믿었던 역대 왕실에서 반승(飯僧)도 열심히 했지만 때로는 성범(聖凡)이나 도속(道俗), 귀천(貴賤) 또는 상하(上下)의 구별이 없이 일체 평등으로 재시(財施)와 법시(法施)를 하는 무차대회 등을 열어 가난한 백성에게 배불리 먹을 기회를 제공하기도 했다.

또 演福寺에 賑濟色을 설치하여 官穀을 풀어 기민을 구제한 일도 있었으니 이러한 예들로 보아 고려시대의 기민구제사업은 국가와 사원의 협동작업으로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즉, 공민왕 3년(서기 1354) 6월에 "기근이 들었으므로 유비창(有備倉)의 곡식을 내어 값을 감(感)하여 백성에게 팔았는데, 당시 쌀이 귀하여 쌀 2되(斗)의 값이 포(布) 1필(疋)이었다. 또 연복사에 진제색을 설치하여 유비창의 쌀 5백석을 방출하여 죽을 쑤어 기민을 구제하였다."는 기록이 있으니 바로 정교(政敎)가 일치하여 빈궁자를 구제한 실례라 하겠다,

그 외에도 고려시대의 구제의료기관으로서 제위보(濟危寶), 동ㆍ서대비원(東ㆍ西大悲院), 혜민국(惠民局) 등 네 기관이 있었는데 그 명칭에서 알 수 있듯이 모두 불교정신에 입각한 구제기관이었다. 즉, 고려시대의 조직적 구제사업은 모두 불교복지의 지도이념 밑에서 행해진 국가 불교복지사업이었다고 할 수 있다.

2) 그리스도敎의 사랑과 그 實踐

그리스도교의 인간존중사상은 초세기 교회에서부터 자선의 형태로 구체화되었다.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신자들에게 사랑의 실천을 강조했고 또 교회의 이름으로 자선사업을 행했다. 루가복음서는 "그러므로 당신이 잔치를 베풀 때에는 오히려 가난한 사람, 불구자, 절름발이, 맹인 같은 사람들을 부르시오, 그러면 당신은 행복합니다. 그들은 갚을 수 없는 사람이지만 착한 사람들이 부활할 때에 하느님께서 당신에게 갚아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루가 14/13 ∼14)고하면서"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어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그러면 하늘에서 보화를 얻게 될 것이다."(루가 18/22)고 했다.

이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따라 제자들은 신자들에게 자선을 권유했고 ,(사도행전 10/4)제도적인 구제활동도 벌였다. 그것은 과부들에게 식량배급을 하는 일로 말썽이 생기자 이 일을 전담할 사람을 뽑게 한 것이라든지(사도행전 6/1∼4) 사도들이 자선을 권유한 내용은 풍부하다.

그리스도와 그 제자들의 가르침은 그 후계자들을 통해 교회 안에 전해졌으니 즉, 2세기 중엽 뽈리까르푸스(Polycarpus)는 "돈을 사랑하는 것은 모든 악의 뿌리"라고 하면서 우리는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인생이다. 우리는 먼저 육신생활에 필요한 것을 충족시켜야 하지만 일단 충족되면 나머지 정열은「정의와 자비, 사랑, 용기, 관대함」을 추구하는데 힘써야 한다고 했다.

2세기말 디오그네투스(Diogenetus)는 그리스도교 신자들에게 물질재화를 이웃들에게 나눔으로써 하느님의 자비를 본뜨라고 했고, 3세기 초 알렉산드리아의 글렌멘스(Clemens Alexandrinus)는 남을 망각한 재산축적은 그 인간의 非情외에 아무 것도 아니다고 하면서 그리스도신자는 자기가 물려받은 것이 모두 하느님께 받은 은혜임을 인정해야 한다고 했다. 그것은 "본인보다도 형제를 위하여" 주신 것이며, 따라서 자기는 타인을 섬기는 "신성하고도 고귀한 직무"에 고용된 몸이라고 여겨야 한다고 했다. 또 암브로시우스(Ambrosius) (339∼397)는 당시 일반 대중이 권리를 억압당하고 있다고 보아 "하느님의 선물을 나누어 가질 권리가 만인에게 있다."는 사상을 펼쳤다.

이러한 성서와 교부들의 사상에 바탕을 둔 기독교의 자선, 구제사업이 세월이 지남에 따라 자선행위 자체만을 강조하다 보니 그 근본정신이 퇴색되어 갔다. 즉, 중세에는 두 가지 구제사업에 대한 개념이 등장하였으니 첫째는 예수님처럼 가나하고 병든 자를 아낌없이 사랑으로 도와주는 순수한 사상과, 둘째는 남을 구제함으로써 그 공로로 조의 벌을 용서받는다는 사상이었으니, 즉, 자선을 행함으로써 얻어진다는 죄장소멸(罪障消滅)의 사상인 것이다. 그래서 자선은 하느님과 인간을 사랑하기 때문에 행한다는 본래의 뜻이 약화되고 자신의 죄를 속죄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하는 필요에 의해서 행했던 것이다. 여기서 자선은 의무라기 보다 자의적인 것이 되었고 도움을 받는 사람의 입장이 아닌 자선을 행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베풀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속죄의 사상에서 더 나아가 "하늘나라에 보화를 쌓는다."(마태오 6/19∼20)(루가 12/33∼34)는 사상에서 자선사업은 크게 번성했고 교회는 무차별로 자선을 베풀었다. 결과는 걸인과 유랑자를 조장했고 직업화했다.는 비난을 오늘날에 와서 듣게 되었다.

이러한 사상에 따라 교회와 수도회는 자선과 빈민구제활동을 펼쳤고 신자들의 헌금과 기부금이 그 재원이 되었다. 또 수도원에서는 자력으로 많은 생활자료를 생산할 뿐만 아니라 외부로부터 들어오는 재물들을 대민봉사의 재원으로 쓰는 등 구호의 문을 넓혔다. 흉년이 들어 굶주릴 때면 수많은 농민들과 여행자들의 보호소를 개설하여 가난한자들에게 자선을 베풀었다는 기록도 있다. 그러나 당시 수도단체들은 양면성을 가지고 있었으니, 즉, 하나는 대외봉사의 자선활동이요, 다른 하나는 물질에 대하여 수도규칙이 명하는 청빈의 정신과는 먼 성격이 있었음을 지적할 수 있다. 당시 수도원들은 청빈을 강조하면서도 많은 기부를 받아왔고, 이리하여 수도원의 재산이 늘게 되자 청빈은 없어지고 타락한 경우도 있었는데, 대개의 수도원들이 창립 당시의 정신은 망각하고 사치와 향락에 빠져갔다.

하여튼 비록 수도단체들이 많은 부로 말미암아 사치와 향락에 빠진 경우가 있다 해도 당시 자선사업은 또 하나의 당연한 교회사업으로 생각되었다. 그러나 그 자선이 나중에는 단지 자선을 위한 자선으로 되어 버렸다. 그래서 피카르드(B. J Piccard)여사는 "비록 哀矜犧事가 수도자나 수도회의 중요한 일이긴 했지만 그 자선이 그리스도의 가르침대로 성심을 다한 노력은 아니었다."고 지적했다.

이와 같이 이웃사랑의 표현으로서의 자선이 의무요 책임이라는 생각에서 점차 자선 그 자체를 지나치게 강조했다. 또 죄의 속죄요 하늘나라에 보화를 쌓는 것이 썩고 도둑이 들 위험이 있는 재물을 세속에 쌓아 두는 것 보다 낫다고 신자들을 가르쳤다. 이것이 점차로 현세적 재물의 허무함으로 전락했고, 마침내 현세적이고 물질적이고 육체적인 모든 것은 인간구원의 장해요소이며 원수라고 하였으니 여기서 현세와 재물과 육체에 대한 경시사상이 나타났다. 이것은 소위 엄격주의 신학사상에서 나온 것이다.

이러한 중세의 신학사상에 반발하여 나타난 것이 르네상스와 함께 일어난 소위 종교혁명이었다. 마르틴 루터에 의해 주도된 프로테스탄트의 신학사상은 여러 면에서 가톨릭의 사고와 차이점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그리스도이래 강조되어온 "행동 없는 신앙은 죽은 신앙"이라는 사상에서 출발한 자선· 구제활동이 근본에서부터 흔들리게 되었다. 즉, 자선이나 구제활동 자체가 무의미한 것으로 부인된 것은 아니나 자선이 인간구원을 위해 필요한 수단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인간은 그의 선행으로 구원되는 것이 아니라 신앙으로 구원된다는 것이다. 마르틴 루터의 「신앙만으로 義化된다」는 주장의 개요를 좀더 자세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즉,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는 죄스러운 행동을 피하는데 있지도 않고 덕행을 행하는 데 있지도 않으며 그리스도의 공로에 의지하는데 있을 따름이다. 그리스도는 당신의 은총에 의탁하는 사람들에게 구원의 선물을 거저 주신다." 이와 같은 루터의 신앙교리는 스콜라 사상의 주지주의 신앙관에 대한 의식적인 반발이자 선행으로 義化된다는 교리에 정면으로 반대한 것이었다. 신앙이란 하느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행하시는 구원활동을 깨닫고 받아들이는 행동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점에서 칼빈의 신앙교리도 루터와 비슷하다.

루터나 칼빈이 신앙만이 인간을 구원케 하고 선행이나 덕행이 인간을 변혁시키는 것이 아니라는 사상을 가졌으면서도 선행을 등한시하거나 가치가 없는 것으로 여긴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선행을 강조하고 있다. 그것은 참 신앙인 이라면 그리스도를 본받을 것이고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는 당연히 사랑을 실천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루터는 「로마서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신앙이란 하느님이 우리 안에서 변화를 가져오시는 무엇이다. 신앙은 우리를 변화시키며 우리는 하느님께로부터 다시 태어난다(요한 1:13) 신앙은 옛 아담을 죽이고 마음과 정신과 우리의 모든 능력에 있어 전혀 다른 사람이 되게 만든다. 신앙에는 성령께서 동반하신다. 오! 신앙에 가까이 간다는 것은 얼마나 생동하고 창조적이고 능동적이며 막강한 일인가! 언제나 남들에게 선을 행하지 않고는 견디지 못한다.····

그러므로 신앙의 인간은 억지로가 아니라 자원해서 그리고 쾌히 모든 이에게 선을 행하고 모든 이에게 봉사하며 모든 역경을 견뎌낸다. 자기에게 그토록 큰 은총을 베풀어주신 하느님의 사랑과 영광을 위해서 그렇게 하는 것이다. 불에서 나오는 열과 빛을 분리할 수 없듯이 신앙에서 행실을 분리시킬 수는 없다." 결국 그리스도교에 있어서 자선과 이웃사랑은 신자로서의 당연한 의무요 본분이라는 것이다.

그리스도교 사상에서 이웃사랑의 의무관념이 매우 중요하다. 힘있는 자는 사랑의 사업에 이를 쓰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리스도가 가르친 사랑은 길거리를 방황하는 거지에게 동전 한푼을 던져두고 훌쩍 가버리는 그러한 즉흥적이고 감상적 만족에 도취하는 것이 아니다. 하느님 앞에서의 형제로서 인격평등을 인정하는 인류애를 북돋고 있는 것이다. 동정을 베풀라고 가르치는 것은 아니다. 서로 사랑하라고 이르는 것이다. 그뿐 아니라 재왕은 공익을 확대하기 위하여 하느님으로부터 임명되었으므로 그들은 그것을 수호할 의무가 있다고 하였다. 이러한 그리스도교의 이웃사랑의 가르침은 중세를 통해 교구단위와 수도단체별로 활발한 자선사업을 펼쳤는데 이것이 시대의 변천과 함께 마침내 교회로부터 지역자치단체로, 그것이 드디어는 국가에로 이전되었다.

그러나 이때까지만 해도 단순한 공적 부조의 성격을 벗어나지 못하던 구빈제도가 영국의 산업혁명과 함께 그 양상이 달라졌다. 지금까지의 농업자본주의가 산업자본주의화 하면서 급속히 발전함에 따라 빈부격차가 심해지고 대량실업의 문제가 생겼다. 결국 중세 교부들의 사상은 부의 편재에 대항해서 소유권 사상을 전개하면서 모든 사람이 재산을 나누어 가질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던 것인데, 이것이 19세기에 들어와서 근대적 자본주의가 발달함에 따라 인간사회를 소수의 유산계급과 다수의 무산계급으로 양분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그 결과는 심각한 사회문제를 야기 시켰다. 절대 빈궁자에 대한 구제는 오로지 가진자들의 자비심에만 의존하게 되었고, 극단적인 곤경에 처한 이들 가난한 대중들을 상대로 사회주의 또는 공산주의가 팽배해지게 되었는데, 이때 교회는 전통적인 가르침을 다시 한번 전 세계에 선포하였으니, 그것이 1891년 5월 15일에 반포한 교황 레오13세의 유명한 회칙「레룸 노바룸」(Rerum Novarum)이다. 그후 1931년 5월15일 교황 비오11세는 「레룸 노바룸」반포40주년을 기념해서 발표한 회칙「꽈드라제시모 안노」(Quadragesimo Anno)에서 사유재산은 그 개인의 행복과 공공의 복리를 위해서 쓰여져야 한다는 소유권의 이중성격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그후 현대에 와서도 여러 교황들의 가르침 가운데 이런 사상은 끊임없이 강조되고 있으니, 즉, 교황 바오로 6세는 1967년 3월26일에 반포한 「민족들의 발전촉진에 관한 회칙」(populorum progressio)에서 소유권이 절대적 또는 무조건의 권리는 아님을 강조하여 어떠한 경우에 있어서도 소유권은 공동선에 반대하여 행사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만일 개인의 기득권과 공동체의 요구 사이에 충돌이 생긴다면 개인과 사회단체들의 협력을 얻어서 문제를 해결하도록 노력하는 것이 국가권력의 책임이라고 했다. 이러한 국가책임 아래 공동선을 구현하고자 하는 노력이 사회복지제도라고 할 수 있는데 현대 교회도 이러한 제도를 적극 지지하고 권장하고 있다. 즉, 교황 요한 23세는 1961년 5월15일에 반포한 유명한 회칙「어머니와 교사」(Matter et Magistra)에서 사회보험과 사회보장제도는 한 국가의 전체수입을 정의와 공평의 기준에 의하여 재분배하는데 유효한 공헌을 할 수 있는 것이며, 따라서 그것은 국민 각층의 생활수준의 균형을 회복하는 도구의 하나라고 했다.

중세에 토마스가 帝王은 공익을 확대하기 위하여 하느님으로부터 임명되었으므로 그들은 그것을 수호할 의무가 있다고 했는데 토마스가 말한 이 帝王의 책임은 오늘날 국가의 책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 사회복지의 이념적 출발을 인간복지에 대한 사회 또는 국가의 책임에서 출발한다고 볼 때 그의 그리스도교의 이러한 사상이 사회복지사상의 생성, 발전에 바탕이 되었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Ⅲ. 東西 福祉思想의 比較

사회복지사상의 바탕이라 할만한 인간존중사상과 그 구체적 규범으로서의 자비, 仁, 사랑의 사상이 그리스도교나 유교· 불교에 있어 다같이 기본교리로 강조되고 있고 또 그 개념이 본질적으로 비슷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리스도교의 "하느님을 닮은 인간"과 불교의 一切衆生은 다 같은 佛性을 가졌다."는 사상은 그 맥을 같이한다고 볼 수 있다. 그 본질적 개념상의 일치는 말할 수 없다 해도 양 종교가 다같이 신앙의 대상으로서의 절대자에 인간존엄성의 바탕을 두고 있다는 점에서 같은 의미로 보는 것이다. 그러나 유교에 있어서는 그리스도교의 하느님 개념 비슷한 天은 존재하나, 이천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은 없고 더구나 天과 인간과의 관계에 대한 친밀성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래서 書經에서는 “하늘은 친할 수 없으나 능히 공경하는 자는 친할 수 있으며"라고 했다.

그리스도교와 불교에서는 인간을 하느님 또는 부처님과 동일시하고 인생의 목표를 하느님과 같이 완전하게 되는 것, 또는 자기안에 내재하는 불성을 개발하여 부처가 되는 것에다 두었다. 그래서 불교와 그리스도교의 인간존엄사상에는 만인평등의 사상이 포함되어 있다. 유교사상에서는 天의 창조주로서의 개념은 분명치 않지만 하늘이 만물을 다스리는 역할만은 분명히 나타나고 있다. 즉, 하늘은 인간을 통해서, 특히, 왕과 왕의 통치를 통해서 세상 만물을 다스리고 은혜를 베풀고 전달한다. 그런데 왕이 하늘의 뜻을 따르지 못하고 하늘이 원하는 바를 실행에 옮기지 않으면 그 왕을 내쫓고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그 자리를 대신하게 한다. 소위 오늘날의 국민저항권 사상이라 하겠다.

공자의 이러한 사상은 시대와 학파에 따라서 갖가지 해석을 붙이게 되었다. 우리 나라에와서 이조세대의 선비들은 정치권력을 장악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는 시대사상과 당파적 이념에 따라서 극히 복잡하고 궤변에 가까운 개념으로 만들어 버렸다. 즉, 정치질서를 최우선 가치로 설정해 놓고 이를 지키기 위해 공자의 가르침을 왜곡되게 해석하고 가르쳤다. 여기서 유교의 사상은 인간평등의 사상이 아닌 인간차별의 사상, 즉, 치자와 피치자, 어른과 아이, 양반과 상민, 남자와 여자 등 매사를 지배, 피지배의 차별관계로 설정해 놓고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권리· 의무가 서로 다르다고 했다. 이러한 유교의 사상에서는 만인평등과 복지권 사상은 생겨날 여지가 없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유교에서는 불교의 자비와 그리스도교의 사랑과 같은 개념으로서의 仁을 가르치고 있다. 이성배 신부는 그의 빠리대학 기초신학 박사학위 논문에서" 삐에르 도딘은 그의 저서「공자와 중국 인문주의」에서 주저하지 않고 「仁」을 사랑이란 단 하나의 원리로 환원시킨다."고하면서 그도 "인은 사랑이 될 수도 있다."고 거침없이 말한다. 이렇게 볼 때 자비·인·사랑은 같은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그리스도교의 사랑실천 행위가 자선으로 나타났고 불교의 자비사상은 布施精神으로 발전했는데 유교의 仁은 禮로 구체화되면서 결국 인간 상호간의 관계규범으로 발전 해버렸다. 우리 민중을 최초로 지배한 종교가 불교요 이 불교는 그리스도교와 마찬가지로 인간존중사상이라든가 보시사상 등 훌륭한 사상을 가지고 있었고 이러한 사상이 사회복지사상의 원천이 되었고, 또 사실 이러한 종교사상을 바탕으로 한 자선, 구제사업이 고려 때까지만 해도 활발히 전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까지 계승, 발전 해오지 못했던 이유는 어디에 있는가? 그것은 우리 민중에 뿌리 깊이 작용하는 무속과 유교의 영향에서 찾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오늘날 우리의 민중종교는 불교와 기독교밖에 없다. 그러나 이러한 고등종교 보다 더 많이 우리 민중의 의식을 지배하는 사상으로 무속과 유교를 들 수 있다. 무속은 아직도 우리의 민중의식 속에 깊은 뿌리를 박고 온갖 형태로 표출되고 있으며 유교는 종교라기보다 하나의 사상으로서 또한 우리의 민족정신을 지배하고 있다. 우리민족의 삶의 역사 속에 5천년이 넘도록 문화적· 민족적 동질성이 거의 파괴되지 않고서 지켜져 온 그 원동력을 김인회는 무속을 제외하고는 다른 곳에서 찾을 수 없다고 했다. 왜냐하면 "이 땅에서 수 천년 동안 거의 변치 않고서 살아 움직여 온 문화내용 중에 첫째로 꼽힐 수 있는 것이 바로 무속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또 유교의 영향을 보면 우리 역사의 근세 5백년을 유교가 지배해온 이씨조선이었고, 그후 이씨조선은 망하고 일제식민통치 아래 민족문화 말살정책으로 우리의 문화유산의 단절이 있었다. 그뿐 아니라 이 두 사상은 어떤 면에서는 불교와 기독교 같은 고등종교의 사상까지도 지배하여 이들 종교의 기본사상을 변질시키기도 한다. 무속은 가장 뿌리 깊은 역사를 가지고 우리를 지배해왔고 유교는 가장 최근 5백여 년 동안 우리의 사상을 이끌어 왔다.

Ⅳ. 結 論

지금까지 살펴본 대로 우리 나라에서는 옛부터 사회복지의 근본이 될만한 훌륭한 사상적 바탕과 또 그 구체적인 활동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지속적으로 계승, 발전해오지 못하고 이조 5백년동안 유교가 지배하면서 단절의 역사를 맞았다. 그후 해방과 함께 우리의 문화를 되찾고 경제적으로도 후진성을 면하게 되자 국민 복지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 서구 선진국의 복지이념과 제도를 본받으려고 하고 있다.

그런데 오랜 세월동안 동일한 환경 속에 살아온 인간집단은 고유문화를 가지고 있으며 이를 통해 집단 자체를 보호하고 새로운 문화를 개발해 나간다. 그러므로 사회복지를 토착화시키기 위해서는 사회복지의 기원, 그 이상과 목표, 현실적 가치, 미래의 전망 그리고 그 방법과 수준 등에 대해 깊은 연구가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회복지사상의 바탕이 되는 동서양의 종교사상을 비교, 검토함으로써 향후 복지정책수립의 방향을 정립하는데 도움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사회정책에 있어서 비교연구의 이점은 Finer 의 보고서에서처럼 "국가는 다른 국가의 경험으로부터 배울 수 있으며, 그 교훈이 모호할 지라도 여러 접근법은 따로따로 고립되어 행해지는 경우보다 넓은 범위의 정책적 선택을 제시해 줄 수 있다."고 잘 지적하고 있다. Higgins는 "이 인용은 배울만한 교훈으로서의 비교연구의 다른 장점을 지적하고 있다. 많은 이러한 연구가 다른 나라로부터 배울만한 교훈을 지적하고 있다. 이러한 것은 정책개발을 위한 연구에서는 특히 타당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다음과 같은 교훈이 잘못 받아들여져서, 국가간의 차이점에 대한 충분한 고려 없이 한 나라의 정책이 무분별하게 다른 나라에서 받아 들여 질 수도 있다. Cockburn 과 Heclo는 다음과 같이 경고했다. "어떤 나라의 프로그램도 다른 나라에서 그대로 받아들여질 만큼 그 자신의 조건으로 독립되어 있거나 단순하지 않다."고......

종교와 사회정책과의 관계는 본질적으로 두 가지 측면이 있다. 첫째는 종교사상이 사회정책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것이고, 둘째는 복지 제공자로서의 교회의 역할에 관한 것이다. 이점에 있어서 기독교뿐만 아니라 불교, 유태교 등 다른 종교사상의 영향도 과소평가 할 수만은 없다. 종교교리는 여러 가지 사회복지 활동을 위한 근거를 확립해 주었고, 또한 여러 사회에서 사회정책의 이념을 제공해 주기도 했다. 동양의 경우 불교의 "인정, 동정, 온화, 친절, 자비, 시혜 등의 가르침이 사회사업과 사회정책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19세기 영국에서는 사회복지―특히 자원봉사 분야―의 발달에 기독교의 책임과 의무 및 우애의 사상이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었음을 알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우리 나라에 사회복지를 토착화시키는데 있어 불교사상이 장해요인으로 작용 한 면은 없었다고 하겠으나 그렇다고 해서 적극적으로 기여하지도 못하고 있다고 하겠다. 그것은 불교의 인권사상이나 보시사상을 계승, 발전시킬 위대한 불교사상가가 지속적으로 나타나지 못했고, 또 불교가 종교단체로서의 하나의 통일된 사상을 신자들에게 가르치는 기능에 있어서도 그다지 효과적인 조직과 수단을 갖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보다 더 큰 원인은 불교가 신자 개인이 아닌 종교단체나 사찰단위의 布施行이 이조 5백년 이래 자취를 감춘 것이라 하겠다.

그리고 유교사상은 사회복지의 법제화에는 기여한 바가 컸으나 그것이 국가책임이라는 사상으로까지 발전시키지는 못했다. 또 만인 평등의 사상이 아닌 차별사상은 산업화과정에 있는 우리사회에서 민주발전과 함께 사회계층간의 갈등을 심화 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즉, 지배계층은 유교사상에 젖어 평등한 인권 또는 의무로서의 복지가 아닌, 어디까지나 은혜요 자비로 자의에 의한 베풂이라고 생각하는데 비해 근로자계층에서는 보다 민주주의 사상에 입각한 평등사상과 복지권이란 인식아래 당연한 권리로 요구하고 투쟁하기에 이르렀다. 만일 유교사상과 민주주의 사상이 우리 나라 사회계층간에 조화롭게 영향을 미쳤더라면, 즉, 지배계층에서는 민주주의의 평등의식이, 근로자계층에서는 유교사상의 차등의식이 영향을 미치고 있다면 우리사회는 그야말로 이상사회가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따라서 현시점에서는 가진 자 측에 대한 민주의식 고취가 무엇보다 선결문제라 하겠다.

또 무속의 기복신앙은 인간의 변화를 가져오지 못한다. 그래서 인간에 대한 봉사가 의무라는 사상이 여기서는 나올 수가 없다. 따라서 우리 나라가 복지에 있어서도 선진국을 지향한다면 기독교와 불교의 가르침인 만인평등의 사상과 국민복지에 대한 의무, 즉, 국민의 복지권 사상이 복지정책의 기본이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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