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선 아이만 놔두고 외출해도 걸린다 

♧ 지난 여름 이명숙 변호사는 남편과 함께 캐나다에 있는 외국인 부부의 가정을 방문했다가 신선한 문화 충격을 경험했다. 

50대의 노 부부는 이미 자녀들을 대학까지 보내고 난 뒤 한국에서 장애 어린이를 입양해 키우고 있었다. 노 부부는 "한국은 장애아를 버리는 아동학대가 만연하고 있다고 해 그런 아이를 골라 입양해 키우기로 하고 아이를 데려왔다"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자폐 증상을 보이던 아이가 입양 1년 후 정상으로 돌아왔다고 들었다"며 "아이들을 방임하고 학대하는 조국의 현 실이 창피하게 느껴졌다"고 말했다. 

유럽과 미국, 캐나다, 호주 등은 세계적으로도 아동보호 조치가 완벽하게이루어진 나라들로 손꼽힌다. 이 변호사는 "우리는 친권 개념이 강해 자녀를 부모의 부속물 정도로 보지만 미국같은 곳 에서는 어린이 양육과 보호를 사회가 책임져야 한다는 의식이 강 하다"고 말했다. 

친권 의식이 강하다는 것은 부모가 자녀를 훌륭히 키워낼 때는 도움이 되지만 반면, 부모가 자식을 학대하거나 방치했을 때는 오히려 사회가 아이를 보호하는데 방해가 된다.

이 변호사는 "캐나다에서는 부부가 아이를 잠시 자동차 안에 두고 슈퍼에 갔다가는 경찰에 끌려가 혼날 각오를 해야 한다"며 "사소한 방임도 용납되지 않을 정도로 캐나다 사회의 아동보호 의식은 철저하다"고 전했다.  

영국도 마찬가지다. 영국에 파견나간 한 상사 주재원의 부인은 "한국 여자들은 아이들만 집에 두고 외출했다가 돌아와 경찰로부터 아동학대 조사를 받는 일이 왕왕 있다"고 전했다. 이웃에 있는 여자들이 신고하기 때문이다.  

그는 "그 어머니는 경찰로부터 '다시 한 번 아이들만 집에 두고 외출하면 친권을 박탈하고 아이를 보호시설에 보내거나 이웃 어머니들에게 맡기겠다'는 말을 듣고 혼비백산했다"고 전했다.  

경찰은 "당신의 아이를 맡아줄 부모는 얼마든지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아동에 대한 사회적 책임의식 외에 법적인 보호도 우리보다 앞 서 있다. 우리는 아직 아동학대 방지법이 제정돼 있지 않지만, 선진국들은 아동학대를 막는 강력한 법을 제정, 아동의 보호받을 권리를 뒷받침하고 있다. 

미국은 아동보호 서비스 기관에 아동학대와 방임, 착취에 대해 감시 활동을 철저히 할 수 있도록 법적 권한과 책임을 부여하고 있다. 

미국과 캐나다 호주 등 선진 14개국은 아동학대에 대해 강제 의무신고제를 채택하고 있으며, 네덜란드를 비롯한 유럽에서는 아동권리 보호를 위해 국가위원회에 '비밀신고국'까지 두고 있다. 

우리나라와 같은 유교 문화권으로, 장기 불황에 따른 아동학대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고 있는 일본도 95년 법무성과 후생성이 나서 '어린이 인권 110번' '지원자'라는 직통 전화를 만들고, 지역마다 100여명의 인권옹호위원을 둬 아동학대 감시 활동을 펴고 있다. 

우리와 문화·생활수준이 비슷한 대만의 아동보호 활동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대만은 93년 아동복리법을 개정 보완하며, 학대받는 아이들을 위해 가정위탁보호, 시설보호, 지역사회복 지관을 통한 부모와의 분리 등을 실시하고 있다. 특히 대만의 대표적인 아동복지 전문기관인 CCF는 88년부터 93년까지 5개년 계획 을 수립해 조직적인 아동보호 활동과 계몽 운동을 펼쳤다. 

1차년도는 홍보의 해로 정하고 전국에 24개의 핫라인을 설치, 연간 1000명 이상의 아동들로부터 전화를 받고 도움을 줬다. 2차 년도는 행동의 해로, 지역별 아동학대 예방위원회를 조직했으며, 집중적인 아동학대 세미나와 사례발표회를 열었다. 정부도 CCF 산하 4개 기관을 아동학대 업무 위탁기관으로 선정하고 후원했다. 

3차년도는 참여의 해. 아동학대 예방 서비스를 위한 국민후원 운동을 펴고 학교에까지 폭력방지운동 대상에 포함했다. 4차년도는 조사·연구의 해로 소아과 의사들과 함께 아동학대에 대한 실태 조사를 벌여 의료인들의 아동학대에 대한 인식을 높였다. 

마지막 92년부터 93년까지는 입법의 해였다. 93년의 아동복리법 개정은 CCF의 5년에 걸친 조직적 활동의 결과였다. 학대 아동에 대한 치료·부양비를 정부가 부담하고, 학대부모에 대한 아동 보호기관의 조사권을 인정했으며, 아동을 이용한 범죄행위는 형의 절반을 가중처벌하는 것도 이때부터 가능해졌다. 

(김태훈 주간조선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