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직한 장묘문화

경북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박 석 돈

I. 서 론

우리 국토의 약 1%가 묘지라고 한다. 전국적으로 묘지의 넓이가 공장면적의 3배에 달한다고 한다. 매년 여의도 만한 넓이의 묘터가 늘어나고 있다. 현재의 장묘관행이 지속된다면 수도권은 3년이내, 전국적으로는 10년이내에 집단묘지 공급이 한계에 도달하리라는 전망이다. 이러한 문제점을 우리 국민은 누구나가 다 인식하고 있다. 그래서 장묘제도를 바꾸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개인 묘지의 넓이는 줄어들기 보다 오히려 더 늘어나고 더 호화롭게 장식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우리의 장묘문화가 너무나 뿌리가 깊어 쉽사리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제도와 함께 국민의 의식이 바뀌어야 한다.

어떤 철학자는 '인간은 죽기 위해서 산다'고 했다. 어느 누구든 죽음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음을 이렇게 역설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종교에서는 '인생의 궁극 목표를 선한 죽음에 두고 있다.' 무종교인 이나 비록 무신론자라 해도 죽음 앞에서 인간은 두려움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마침내 겸허해 질 수밖에 없다. 결국 인간은 어떠한 일생을 살아간다해도 종국에는 안락하고 평화로운 죽음에 대한 욕구를 져버리지 못한다. 그래서 어느 민족이든 죽음을 성스럽고 정중하게 맞이한다. 이러한 죽음을 앞두고 죽는 이나 산 이가 죽음 이후를 걱정하고 불안에 떨게 해서는 안된다.

II. 현행 장묘문화의 의식구조

1. 조상숭배사상

우리 나라의 장묘문화는 유교에 뿌리를 둔 조상숭배사상과 관련이 깊다. 효에 대한 공자의 가르침을 들어보면 "부모 살아선 예(禮)로써 섬기고, 죽어선 예로써 장사지내 주고, 제사도 예로써 하라"하여 예를 일컫기를 "예(禮)는 천(天)으로부터 온 것이요, 옛 왕들은 이 예를 하늘에서 내려온 천도(天道)로 여겨 백성들에게 지키라고 하였으니 이 예를 따르는 자는 살리라"했다.

맹자는 말하기를 "사자(死者)에게 제사지내는 것이 생자(生者) 기르는 것 보다 더 중차대(重且大)한 일로 사자(死者)는 그 여생(餘生)을 당분간 더 연장시키기 위해서는 제 스스로는 아무것도 마련하지 못하고 오로지 생자(生者)에게 의존되어 있기 때문이다"고 했다. 이와 같은 유교의 가르침에 따라 우리는 효의 한 형태로 조상제사를 매우 중요시해 왔다.

한국 가족제도에 관한 의식을 조사한 보고서를 보면 조상제사(祖上祭祀)에 관하여 제사를 차려야 하느냐 제사를 지내지 않아도 좋으냐의 질문에 대하여 대부분이 제사를 지내야 한다고 대답했다. 특히 자기가 제사의 의무를 지고 있는 편에서 즉, 호주나 장남이 제사를 지내야 한다는 생각을 더 많이 가지고 있다. 학력별 견해를 보면 학력수준이 높을 수록 제사를 지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러한 사고는 조상숭배사상과 조상에 대한 효가 자손들의 현세적 복락을 좌우한다는 믿음 때문이다. 적어도 '좋은 게 좋다'는 비과학적 샤머니즘에 연유하는 사고방식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사실, 우리 나라의 모든 종교나 사상에는 샤머니즘적 요소가 뿌리 깊게 깔려 있는 경우가 많다.

샤머니즘은 종교라기보다는 주술이라고 부르는 것이 더 적절하다. 주술이라 함은 초자연적, 신비적인 힘을 빌어 여러 가지 현상을 일으켜 길흉을 점치고 화복을 가져오는 술책을 말한다. 주술의 힘을 믿는 사람은 주술로 인간만사를 다 해결(解決)할 수 있다고 믿는다.

주술신앙은 사고방식의 혼합화나 과학정신의 함양을 저해한다. 비합리적, 비윤리적, 비과학적인 주술신앙은 의식구조의 근대화를 저해하는 온갖 미신과 비생산적 망상의 온상이다. 주술신앙이 우리에게 준 큰 폐단으로서 전통적으로 우리 민족성 안에 남아있는 보수성이나 의타성(依他性)을 들 수가 있다. 그래서 한국인은 진취성(進取性)이 없고 현실에 대한 책임과 윤리적인 결단이 없었다. 따라서 자기변혁과 환경의 개혁에 무관심하였다. 그것은 모든 것이 자신에게 책임이 있는 것이 아니라 초월적인 신명(神明)에게 매여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샤머니즘의 이러한 퇴행적인 혼합주의 현상은 비단 종교계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사상, 경제, 정치 등 문화전반에서 늘 반복되는 달갑지 않은 사상적 병리이다. 또한 조선조(朝鮮朝)이래의 정치적, 문화적 쇄국주의를 이 땅에 형성했고, 오늘날까지도 우리의 고루한 형식주의와 폐쇄적 생리(閉鎖的 生理)를 버리지 못하는 것은 바로 샤머니즘의 보수성의 발로이다.

이와 같은 보수성향이 장묘문화에도 뿌리 깊이 팽배해 있기 때문에 국토이용에 있어 우리의 장묘제도가 커다란 위기로 닥쳐왔음에도 지금까지 아무런 변화를 시도하지 못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2. 졸부근성에 의한 과시욕

오늘날 우리가 이만큼이라도 잘 살게 된 것은 불과 10여년 밖에 되지 않는다. 어쩌다 조금 성공하여 돈을 좀 벌게 되었으니 남에게 과시하고 싶은 졸부근성이 발동한 것이다. 그 표현의 하나로 몸을 치장하고 집을 크게 짓는다. 그러나 이런 일들은 객지에서의 과시일 뿐, 옛날 못살던 시절, 고향을 등지고 정처없이 떠나 온 시절을 생각하고, 고향사람들에게도 자기의 조그마한 성공을 과시하고 싶은 욕망이 발동하는 것이다. 그것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선산에 버리고 온 조상의 묘를 다시 가꾸고 호화롭게 장식하는 일이다. 최근 이러한 졸부근성이 풍수지리설과 맞물려 전국적으로 명당자리를 찾아 이장하는 일이 소위 성공한 사람들의 유행처럼 되었다. 우리 국민의 71.6%가 풍수설을 믿는다고 한다.

이제 살만큼 되었으니 조상 묘터를 꾸미자는 것이다. 조상을 잘 섬겨야 자자손손 복을 받는다는 사고인가? 묘 때문에 복을 받는가? 복을 받았으니까 묘를 꾸미는가? 참으로 알 수 없는 사고방식이다.

III. 바람직한 장묘문화

1. 묘지크기의 제한

사회복지적 측면에서의 최소한의 매장 면적 또는 무료화장의 보장과 동등한 면적의 사용으로 평등이념의 구현을 실현시켜야 할 것이다. 국립묘지의 경우 대통령은 80평, 사병은 1평으로 규정되어 있다. 이러한 지도층의 극심한 불평등의 요소가 존재하는 한 일반 국민들의 지나친 욕망을 제한할 수는 없을 것이다. 현행의 장묘제도에서는 개인묘지 24평(80㎡)이하에 1기당 9평(30㎡)이하로 되어 있고, 가족묘지 151평(500㎡)이하에 1기당 9평(30㎡)이하로 되어 있다. 살았을 때의 불평등이 죽은 후에까지 연장되면 영원한 불평등이 된다. 묘지 크기의 제한은 산 자들을 위한 사회복지적 의미도 있다. 묘지경쟁으로 산 자들의 인간다운 생활에 지장을 받아서는 곤란하지 않겠는가?

이를 구현하기 위해 국립묘지의 1기당 묘지의 크기를 훨씬 작은 규모로 축소시켜야 할 것이다. 그리고 개인의 묘지도 개인은 1기당 1평으로 제한하고, 가족묘지의 경우 3평 미만으로 제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프랑스의 경우 1평 정도의 가족묘지에 죽는 순서대로 상하수직으로 매장한다. 우리의 풍습으로는 먼저 죽은 사람의 묘 보다 높은 위치에 향열이 낮은 사람이 묻힐 수 없다.

2. 시한부 장묘제도

예로부터 조상제사는 5대에 한한다. 그러나 요즈음 세상에 5대조를 제사지내는 집은 흔하지 않다. 더구나 요즈음 청소년들의 가치관으로 볼 때 조부모는 물론이요 부모까지도 얼마나 잘 모실지 참으로 알 수 없는 일이다. 현재 전국적으로 무연분묘가 40%에 달한다고 한다. 이렇게 볼 때, 묘를 영구적으로 보존한다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다. 따라서 시한부 장묘제도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

최근 천주교에서는 시한부 장묘제도를 도입하여 최초 20년, 1차에 한해서 15년을 연장할 수 있도록 했다. 이 제도에 대해 천주교 신자들은 아무런 불평없이 잘 수용하고 있다. 다만, 최초의 20년이나, 1차에 한해서 15년 연장이라는 기간에 대해서는 다른 의견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기본적인 원칙은 묘지를 영구보존하는 것이 아니라 시한부로 사용한다는 뜻이다. 즉, 묘지에 대해 개인이 [소유권]을 갖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기간 동안 [사용권]만 갖는다는 것이다.

"단기 또는 일시분묘의 단점으로 그 가족의 애정이 식기도 전에 토지의 재사용이라는 이유로 유골을 급히 처리하는 처사에 대해 불만이 많다."는 반론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유골의 처리과정과 납골당 기타의 장소에 보존하는 방법과 정중한 의식절차로 이를 해소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3. 화장과 납골당

우리의 전통은 매장을 절대적으로 선호한다. 우리의 국민의식은 화장을 장려해야 한다(71%)고 응답하면서도 자신이나 가족을 화장하겠다(11%)는 의식은 매우 낮은 이율배반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최근 사회지도층을 중심으로 화장을 권장하는 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이러한 운동이 확산될 때, 연고가 없거나 가난한 자들이 어쩔 수 없이 화장을 한다는 고정관념을 바꿀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화장운동과 함께 화장장의 시설을 현대식으로 개선하고 깨끗하게 만들어야 할 것이다. 흔히 화장은 두벌죽음이라는 생각을 하는데 그것은 화장장면을 유족들이 볼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죽은 이의 주검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자 한다. 그것은 죽은 시체의 처참하고 무서운 모습을 보게 함으로써 죽은 자와 산 자 간의 인연을 끊게 하려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그러나 서양사람들은 평화로운 주검은 공개하지만 처참한 주검은 유족들에게도 보여주지 않는 것이 관습이다. 그것은 죽은 이와의 아름다웠던 추억을 오래도록 가슴 속에 간직하기 위해서이다. 괌에서의 KAL기 참사 때 미국 측에서는 처참하게 죽은 사람들의 모습을 가족들에게 보여주어 육안으로 확인하기보다 과학적인 방법으로 가족임을 확인하고 시신을 인도하려고 했다. 그러나 문화적 차이로 이를 관철시키지 못하고 우리측 주장대로 유족들에게 불에 탄 처참한 모습의 시신을 일일이 보여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화장을 권장하기 위해서 뿐만 아니라 최소한의 인간다운 죽음을 보장하기 위해서라도 화장은 국가의 비용으로 무료로 서비스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4. 단계적 시행

이상의 여러 가지 방안들은 지금까지의 우리 관행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기 때문에 시행하는데 많은 충돌이 있을 수 있다. 따라서 지속적인 교육과 홍보 그리고 시민운동의 차원으로 이끌어 가야할 것이다. 동시에 이러한 시책들을 일시에 시행하기보다 점차적으로 운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예컨대, 묘지의 크기도 점차적으로 축소해 가고 시한부장묘는 점진적으로 그 기간을 단축시켜 가는 방법이다. 이러한 차원에서 대한불교 조계종 정법회 거사림에서 추진하고 있는 납골당 조성계획에 대해서 필자는 전적으로 찬성하는 입장이다.

IV. 결 론

우리 나라 장묘문화는 자손을 위한, 다시 말하면 생존자 중심의,생존자를 위한 의식에 바탕을 두고 형성, 발전해 왔다. 그러나 오늘날 조상묘터에 따라서 또는 조상숭배의 결과에 따라서 현세에서의 길흉화복이 결정된다고 믿는 사람은 흔하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장묘문화가 전혀 바뀌지 않고 오히려 더욱 복고적인 경향을 보인다는 것은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이러한 비합리적인 장묘문화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사회지도층의 솔선수범과 함께 정부의 강력한 지도와 단속의 의지가 필요하다. 현재에도 정부가 의지만 있다면 70%가 넘는 무허가 사설묘지를 축소시킬 수 있고 40%에 달하는 무연고 분묘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의 효 관념을 재고해 볼 필요가 있다. 진정한 효는 부모가 살아 있을 때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돕고 지원하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세태는 살아 있는 부모는 학대하고 방치하고 유기 하면서 죽은 부모의 묘터는 크고 호화롭게 장식한다. 명절이면 너 나 할 것 없이 성묘 가는 것이 필수적인 행사로 되어 있다. 더구나 우리의 묘지는 혐오시설로 되어 주거지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그래서 자연적으로 도로는 명절 때마다 교통체증이 심각하다. 사실 죽은 후의 이러한 행동은 하나의 허례허식일 뿐 진정한 효라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부모 살아 계실 때 효도를 다하고 돌아가신 후에는 시대에 맞게 합리적인 방법으로 추모하는 새로운 문화를 창조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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