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천주교 주교회의 사회복지위원회,「가톨릭사회복지」(통권3호,1994년 겨울),PP.6-10)

성 토마스 아퀴나스의 복지이념

박 석 돈
(경북대학교 교수, 사회복지학)

성 토마스 아퀴나스는 사회사업가가 아니다. 그는 순수한 학자였다. 그러나 그의 학문 영역은 놀라우리만큼 광범위하였고 방대한 저서들을 남겼다. 사회복지의 이념이나 제도들은 그리스도교의 사상에서 나온 것이다. 그리스도교 사상은 물론 성서에 근거를 두고 교회 역사 안에서 수많은 교부들의 가르침을 통해 이어져 왔다. 이러한 교회의 가르침을 토마스는 철학적て사상적으로 집대성하고 체계화하였다. 토마스의 대표작은 신학대전이다. 따라서 신학대전은 사회복지의 철학과 가치들이 풍부히 담겨있는 보고라고 할 수 있다.

성 토마스 아퀴나스(St. Thomas Aquinas,1224-1274)는 1224/1225년 로마에서 나폴리로 가는 도중에 있는 아퀴노(Aquino)근처의 로까세까(Roccasecca)城에서 성주인 아버지 란돌프(Landolf)백작과 어머니 테오도라 사이에 일곱 번째 아들로 태어났다. 5살에 몬테 까지노의 베네딕또 수도원에 들어가 9년간1230-1239) 거기서 기초적인 공부를 했다. 당시는 교황과 황제 사이에 투쟁이 치열하던 때였는데 몬테 까지노 수도원이 교황께 너무 순종적이라는 이유로 황제는 수사들을 이곳에서 추방하였다. 토마스는 가족들에게 돌아와 잠시 머물다가 다시 나폴리 대학에 진학하였다. 이때 이미 나폴리는 학문의 중심지였고 토마스는 이곳에서 훗날 대학자가 될 소양을 닦을 수 있었다. 나폴리에는 그 당시 새로 생긴 탁발 수도회인 도미니꼬회가 진출해 있었는데, 토마스는 도미니꼬회 수도자들이 구걸생활을 하면서 복음전파에 매진하는 생활 모습에 감명을 받아 이 수도회에 입회하였다. 1244년 토마스가 20세 때였다.

도미니꼬회 수도자가 된 토마스는 1245-1248년 사이에 도미니꼬 수도회의 대표적 신학자이며 당대의 대석학 성 알베르또(Albertus Magnus,1206/7-80)에게 사사, 아리스토텔레스에 대한 방대한 지식을 습득하였다. 1255-56년도에 토마스는 프란치스꼬 수도회의 성 보나벤뚜라(Bonaventura)와 함께 빠리 대학의 신학 교수가 되었다. 이때 그의 나이 불과 30살이었다.

1259년 교황의 신학고문이 되어 이태리로 돌아왔다. 1264년 우르바노 교황은 빵과 포도주가 그리스도의 살과 피로 변하는 성체성사를 현양하기 위해 성체축일을 제정하고 그 축일의 전례에 쓰기 위해 토마스에게 성체찬가를 짓도록 의뢰한다. 이때 지은 노래가 바로 오늘날 우리가 즐겨 부르는 [성 토마스의 성체찬가] 이다.

1265년부터 로마의 성녀 사비나(Santa Sabina) 신학원에서 신학 강의를 하면서 토마스는 그의 최대 걸작인 신학대전(Summa Theologiae)의 제1부를 완성하였다. 1268년 빠리 대학의 교수로 재임용 되어 빠리에서 지내는 동안 신학대전의 제2부를 저술하였다. 그후 1272년 봄, 토마스는 나폴리에 도미니꼬 수도회 신학원을 설립하고 그곳에서 강의를 하면서 신학대전의 제3부를 집필하였다.

1273년 초, 교황 그레고리오 10세(Gregorius X)에 의해 소집된 리용(Lyon)공의회에 참석하기 위해 이태리에서 프랑스로 가던 도중 1274년 3월 7일 서거하였다. 그는 비록 49세라는 나이로 일생을 마쳤지만 오늘날 우리들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방대한 저서를 남겼다. 그는 중세를 대표하는 철학자요 신학자이며 그의 사상은 오늘날 서구사상을 형성하는 바탕이 되었다. 그의 대표작 [신학대전]은 오늘날까지 광범한 학문분야에서 즐겨 인용되는 고전으로 되어있다.

1323년 7월 21일에 토마스는 교황 요한 22세에 의해 성인이 되었고 1567년에는 교회박사로 선포되었다. 그후 19세기말에 와서 교황 레오 13세는 회칙 [영원한 아버지](Aeterni Patris)를 발표, 토마스 철학을 가톨릭교리의 토대로 삼았다. 1914년에는 토마스의 신학뿐만 아니라 토마스의 철학이 교황 비오 10세에 의해 교회의 교육기관에서 명예로운 독특한 위치를 부여받았다.

[신학대전](Summa Theologiae)은 모두 3부로 되어 있는데, 제1부에서는 하느님에 대해서 논하고, 제2부는 하느님의 모상인 인간이 어떻게 하여 궁극의 목적인 하느님께로 돌아가는가를 논한다. 제3부는 하느님과 인간을 매개하는 그리스도를 논하고 있다. 이 가운데서 우리가 관심을 갖는 사회복지사상은 제2부의 인간을 다룬 부분에서 사회복지사상의 근본이 되는 인간존엄성 사상과 개별화의 원리를 찾아볼 수 있고, 정의 부분에서 사회복지의 기본가치인 평등, 공동선, 국가책임사상 등을 찾아볼 수 있다.

그리스도교에서는 인간 존엄성의 사상적 기초를 "하느님의 모습을 닮은 인간"(창세기 1,26-27)에서 찾는다. 이것을 토마스는 은총의 선물이라고 했다. 또한 토마스는 인간이란 영혼과 육체가 합일한 존재라고 하는 一元論을 지지했다. 따라서 인간은 그 全人間性에 대해서 연구되고 존중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영혼은 구원의 대상이 되고 육체는 썩어 없어 질 존재로 인간을 죄로 유인하는 원수로 배척의 대상이라는 二元論은 잘못이라는 것이다. 토마스는 "인간은 마치 그 영혼이 없으면 인간이 아닌 것과 같이 그 육체가 없이는 인간이 아닌 것이다. 또한 한 인간의 영혼이 그의 영혼인 것과 같이, 그의 육체도 그 사람의 것이다. 그리고 인간은 오로지 그 두 가지에 의해서만 균형이 잡히고 통일되는 것"이라고 했다. 그 사람이 설사 공동선에 아무런 기여함이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해악을 끼치는 존재라 해도 그 본성 안에 가지고 있는 그 가치 때문에 사회적 가치도 인정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인간 존엄사상이 노예나 여성의 해방을 가져 왔고 심지어는 흉악한 범죄인들까지도 인권을 인정하면서 "그 죄는 미워하되 죄인은 미워하지 마라"고하는 것이다.

사회복지사업의 현장에서 인간 존엄성의 문제가 심각하게 제기되었던 사례가 있다. 오스트리아의 노인요양시설에서 있었던 일이다. 인생의 낙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이 죽을 날만 기다리는 중증요양시설이기 때문에 24시간 보호가 필요한 곳이었다. 어느 날 한 간호사가 그 노인들의 존재 가치에 대해 회의를 갖게 되었다. 간호사 자신도 힘든 근무지만 노인들도 차라리 죽여 달라고 애원했다. 그래서 극약을 소량 씩 투여하는 방식으로 노인들의 생명을 단축시켰다. 이 사건이 발각되어 온 오스트리아가 법석을 떨었고 인간의 존엄성을 새롭게 환기시킨 전기가 되었다. 인간 존엄성 사상에 대한 확신이 없이 사회복지사업에 투신한 사람들이 흔히 이러한 함정에 빠지기 쉬운 것이다.

인간은 "개별적이고 비교류적인 존재"(an individual and incommunicable substance)라는 전통적인 개념을 토마스는 특히, 각각의 영혼 (또는 마음)은 독특한 것이고 그 영혼은 '어떤 육체'가 아닌 '하나의 특별한 육체'에 불어넣어 창조된 존재라고 했다. 따라서 인간은 누구나 개별적이고 특별한 존재로 인정받기를 원하는 것이다. 토마스는 이러한 욕구를 욕망, 충동, 박탈, 만족 등과 함께 인간의 [감성적 욕구](sensitive appetite)라고 불렀다. 사회복지의 미시적 개념, 즉 개별사회사업(social casework)의 7대 기본원리 중 개별화의 원리(the Principle of individual difference)의 철학적 기초를 우리는 여기서 찾을 수 있다.

오늘날 사회복지의 거시적 개념으로는 평등의 가치를 지향하고 있다. 사회주의는 평등을 지향하고 자본주의는 개인의 자유를 더 지향한다. 흔히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이념대결에서 사회주의가 판정패했다고 말한다. 소련을 비롯한 동구 공산권의 몰락을 그 증거라고 한다. 그래서 다음은 서구복지국가들이 망할 차례라고 한다. 우리 교회는 전통적으로 사회주의가 부정하는 사유재산권을 인정해 왔다. 그러나 동시에 사유재산권 절대의 원칙이 가져온 폐해를 지적하고 비록 개인의 재산이라 해도 공동선에 맞게 사용할 의무가 있음을 누누이 지적해 왔다. 이러한 재화의 公槪念을 토마스는 자연법에 기인한다고 했다. 토마스의 이론에 따르면 그리스도교의 소유권 이념은 私有共用이다.

이러한 교회의 재산권 사상이 새롭게 부각된 것은 교황 레오 13세에 의해서 였다. 19세기에 들어와서 근대적 자본주의가 발달함에 따라 자유사상과 어울려 소유권 절대자유의 방향으로 치닫게 되었고 결국은 인간사회를 소수의 유산계급과 절대 다수의 무산계급으로 양분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그 결과는 심각한 사회문제를 야기시켰고 극단적인 곤경에 처한 이들 가난한 대중들을 상대로 사회주의 또는 공산주의가 팽배해지게 되었다. 이에 1891년 5월 15일 교황 레오 13세는 회칙 레룸 노바룸(Rerum Novarum)을 통해 전통적인 교회의 가르침을 다시 한 번 전 세계에 선포하였다. 레오 13세 교황은 레룸 노바룸에서 성 토마스의 문헌들을 많이 인용했는데 아마도 당시 시대 상황에 고민하면서 토마스로부터 많은 가르침을 받은 듯하다. 그래서 레오 13세 교황은 회칙 Aeterni Patris를 발표, 결과적으로 20세기 초의 Neo Thomism을 꽃피우게 했다.

오늘날 사회복지의 이념은 모든 국민의 복지권을 주장한다. 성서에서는 사랑과 정의를 동일시하고 있다. 이것이 후대에 와서 정의와 사랑을 구분하면서부터 성서의 정신이 흐려져 버렸다. 성서의 가르침은 가난한 이들에 대한 배려나 불평등을 타파하려는 노력은 사랑이니 동정이니 하는 것에서 비롯하기보다는 정의의 요청에 근거를 두어야 한다는 사상이 바로 그것이다.

예수님의 행적을 기록한 복음사가 중 루가가 소위 오늘날 말하는 사회정의에 가장 관심이 많았던 듯하다. 정의와 연관된 것으로 루가복음 전편에 흐르는 부자들에 대한 경고가 있다. 성서의 일반 사상을 보건대 부가 나쁜 것으로 간주되는 일이 있다면 두 가지 경우뿐이다. 하나는 부가 타인을 지배하는 도구로 쓰여질 때이고 또 하나는 부가 그 주인을 지배할 때이다.

첫 번째의 경우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흔히 있는 자본이 노동을 착취하는 경우가 여기에 해당된다. 그 전형적인 예가 요즈음 불법체류 외국근로자들의 약점을 이용하여 그들을 착취하는 악덕 기업주들이 여기에 해당할 것이다. 두 번째의 경우는 돈이 너무 아까워서 돈을 한푼도 쓸 수 없는 사람이 여기에 해당된다. 돈은 쓸 때 자기 것이요 쓰지 않으면 남의 것이다. 평생을 의사로 봉사하면서 많은 돈을 벌었지만 평소의 생활은 검소하게 살았다면 그는 마음으로 가난한 자이다. 노령이 되어 은퇴하면서 죽을 때까지의 최소한의 재산만 남기고 공익을 위해 잘 써 달라고 교회에 전 재산을 헌납했다면 그는 부를 소유했을 지언정 부의 지배를 받은 자는 아니다.

가난한 자가 행복하고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기 보다 더 어렵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그 부자와 가난한 자의 기준은 무엇인가? 우리는 어느 정도의 부를 소유할 수 있는 것인가? 이 문제에 대해서 토마스는 "각 사람은, 물론 사회적 지위에 어울리는 재산을 가질 수 있다. 따라서 자기 신분이나 지위를 유지하는데 필요한 것까지 타인에게 주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은 아니다"고 한다. 그렇지만 그 신분이 어떻게 해서 얻어진 것이냐 하는 문제를 따진다.

즉, 첫째는 자기의 주어진 신분을 바탕으로 해서 거기에다가 자기의 노력을 쌓아서 얻은 지위로, 이 경우는 일단 정당한 것으로 인정한다. 대부분의 선량한 시민들은 거의가 여기에 해당될 것이다.

둘째는 상속에 의해서 신분이 결정된 것으로, 이 경우는 일정한 한계를 정해서 인정해야 한다. 오늘날 상속재산에 대해 높은 세율을 부과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정신에서 나온 것이다. 따라서 이런 경우에 토마스는 일정한 한계를 정하여 인정해야 한다고 보았다. 일정한 한도 이상의 재산은 세금으로 환수하여 사회의 공익을 위해 써야 한다는 것이다.

셋째는 재산을 취득하고 이를 축적함으로써 얻어지는 지위로 이것은 소위 부익부 빈익빈을 초래하여 큰 사회악을 가져올 수 있다. 요즈음 부로 권력을 얻고 그 권력을 이용하여 부당한 부를 축적하는 부조리가 만연해 있다. 이러한 경우에 토마스는 질서를 문란 시키지 않는 방법으로 그 대부분을 사회로 환원시켜 공동선에 공헌하는 것이 당연한 이치라고 했다. 문민정부가 전격적으로 실명제를 선포했을 때 대다수 국민들은 부당한 재산을 국가가 환수하여 공익을 위해 쓸 줄로 알고 지지를 보냈던 것이다. 하여튼 토마스는 어떠한 경우에도 "사람이 사람에 대하여 특권을 가질 수 없다"는 만인 평등의 원칙을 선언했는데, 이것은 오늘날 사회복지의 이념이 절대빈곤의 해소에서 점차 상대적 빈곤의 해소라고 하는 보다 평등의 원리에로 발전하고 있음은 바로 토마스의 만인 평등의 사상과 일치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토마스의 공동선 사상은 "인간이 선량할 수 있기 위해서는 반드시 공동의 복지에 어긋남이 없어야 한다". "도덕이란 그것이 공동복지에 일치되면 될수록 더 높은 가치를 지니게 된다".는 사상에서 출발한다. 이런 사상을 바탕으로 살펴보면 사회의 목적은 그 사회의 공동선(common good)이며, 개개인의 이익은 아닌 것이다. 동시에 개개인의 이익의 총화도 아니다. 따라서 사회는 공동목적을 위하여 조직된 사람들의 집단이라 할 수 있다. 이 공동목적을 토마스는 공익이라고 보았다. 그러므로 국가는 시민 가운데 어떤 개인이나 집단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모든 사람의 유익을 위하여 존재해야 하는 것이다.

국가는 공익이라는 기준을 가지고 사람들의 현세적 요구를 돌보며 교회는 영원한 요구들을 돌보는 것이다. 사람의 현세적 요구들이란 물질적으로 풍족한 생활을 말하며 이를 위해 사람의 육체적 요구들과 조건들을 공급함으로써 국가는 비록 불완전할지라도 보편적 행복을 이룩하기 위해서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국가제도에 의한 복지나 평등의 구현은 차선책은 될지언정 최선책은 아니다. 어떤 제도이든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양편에서 불만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최선책은 자발적인 나눔, 즉 사랑의 실천뿐이다. 그리스도의 가르침의 극치는 사랑이다. 이웃 사랑의 가치를 "네 이웃에게 해 준 것이 곧 내(예수 그리스도 자신)게 해준 것"(마테오 25,40)이라는 성서 말씀에서 찾는다. 그래서 성 토마스는 비록 "이웃에 대해 선을 베풀지라도 그것은 자기 이웃을 향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이웃 안에 숨어 계시는 하느님께로 향하는 것"이라고 한다. 따라서 모든 인간은 각자가 가지고 있는 하느님의 모상 때문에 존엄하고 평등한 대우를 받아야 하고 인간답게 살 권리를 가졌다고 보는 것이다. 동시에 이웃이 인간다운 삶을 누리지 못하는데 나만 배불리 먹고 사치와 낭비를 일삼는다면 이것은 죄악이다.